[영화 리뷰] '명불허전' 킬러→'무명 허접' 배우

한 순간에 모든 것이 엇갈렸다. 성공률 100%의 완벽한 킬러가 목욕탕 열쇠 때문에 무명배우와 삶이 뒤바뀐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킬러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머리는 기억을 하지 못해도 몸은 기억하는 그의 일상. 어쩌면 그는 킬러의 삶을 살지 않았더라도 그 누구보다 괜찮을 삶을 살았을 듯하다.

영화 `럭키`는 킬러로 살아오다 목욕탕에서 비누를 밟고 넘어지면서 기억을 잃은 `형욱`(유해진)의 이야기다. 잘 나가던 킬러가 기억을 잃고 무명 배우와 인생이 바뀌면서 전개되는 반전 코미 영화인 럭키는 코미디 장르로 흥행에 성공한 `미녀는 괴로워`(2006), `수상한 그녀`(2014)를 떠올리게 한다.

반전 코미디 스토리에 관객들의 호응도가 높은 이유는 무엇보다 복잡한 상황 속에 놓인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전개가 흥미진진하고 유쾌하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 속 한 명의 배우가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면서 보여주는 열연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미녀는 괴로워, 수상한 그녀 속 반전 코미디의 흥행 포인트는 살리고 캐릭터가 선사하는 재미까지 더한 영화 럭키는 관객들 사이에서 흥행몰이 중이다. 개봉 일주일 만에 260만 관객을 돌파한 럭키는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관객수를 늘리고 있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코미디와 액션의 세련된 결합이다. 자아 발견 및 감동 소구에 초점을 맞췄던 기존의 반전 코미디들과는 달리 유해진은 자연스러운 생활밀착형 코믹 연기와 함께 절도 있는 액션으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한다. 최고의 삶을 누리던 킬러 형욱이 무명배우로 운명이 바뀌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 상황 속 코믹 대사와 액션 신은 관객들에게 신선한 웃음을 안긴다.

영화 속에 제시되는 또 한 편의 막장 드라마 역시 깨알재미를 보증하는 웃음 포인트다. 액션 배우로서 성장한 형욱이 TV 드라마에 출연해 연기를 하는 모습은 예상치 못한 재미를 선사한다. 시간이 갈수록 막장 드라마의 캐릭터에 점점 녹아드는 유해진과 뻔뻔하면서도 오바스러운 캐릭터로 뭉친 전혜빈·이동휘의 모습을 보면 폭소를 참기 어렵다. 럭키에서 유해진은 그의 연기 인생 사상 첫 원톱 코미디의 주연을 맡아 유해진의, 유해진에 의한, 유해진을 위한 웃음으로 관객들과 만난다.

자신이 무명 액션배우였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킬러 형욱이 자신의 장기를 적극 활용하며 펼치는 에피소드는 대한민국 코미디 역사상 전무후무한 캐릭터의 탄생을 알린다. 킬러로서 칼을 자유자재로 다뤄 온 형욱이 분식집 단무지 공예나 김밥 아트에서 보여주는 노련한 손놀림과 표정은 유해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코믹 포인트이다.

영화는 유해진에 의해 시작됐다가 끝난다.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유해진은 그동안 출연한 작품의 누적 관객수만 1억 명을 동원한 베테랑 배우로, 무엇보다 캐릭터와 혼연일체 된 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아왔다.

그는 `타짜`를 통해 개성 강한 연기로 주목 받은 이후, `전우치`, `해적:바다로 간 산적`에서 보여준 현실감 넘치는 코믹 연기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이후 `베테랑`, `그놈이다`, `극비수사`, `이끼` 등의 작품에서 웃음기를 뺀 진중한 모습과 섬세한 감정 연기를 통해 탁월한 연기력으로 관객들을 압도하며 자타공인 대한민국 대표 국민배우로서 입지를 굳혔다.

이처럼 장르불문하고 20년 간 맡아왔던 작품마다 인생 캐릭터를 탄생시켰던 유해진이 그 모든 캐릭터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작품 럭키로 1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와 관객을 웃기고 있다.

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억지스러운 진행과 다른 배우들의 존재감 측면에서 럭키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할 듯하다. 바뀐 인생은 제자리로 돌아가는 통쾌함이 있어야 하는데 형욱이 기억을 찾아 가는 과정은 뜬금없다. 숨겨진 반전이 있지만 얽힌 이야기를 한순간에 풀어냈을 때 오는 짜릿함은 없다. 김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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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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