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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재산 이야기] 명마를 얻는 지혜

2016-10-19기사 편집 2016-10-19 06: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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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시조 '주몽'에 얽힌 설화 중 이런 대목이 있다. 주몽은 어려서부터 활쏘기 등 능력이 출중해 금와왕의 왕자들에게 미움을 샀다. 이에 금와왕은 주몽에게 마구간지기를 시켰는데, 주몽은 자신이 점찍어 둔 명마(名馬)의 혀에 바늘을 꽂아 먹이를 잘 못 먹게 해 볼품없는 말로 만들었다. 금와왕 자신은 살찐 말을 타고 이 말을 주몽에게 주었고, 주몽은 다시 잘 돌봐서 예전의 명마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왕자들이 주몽을 해치려고 하자 주몽은 명마를 타고 도주했고, 고구려를 건국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필자는 주몽이 꾀를 써 명마를 얻는 장면이 규제개혁과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명마의 혀에 꽂힌 바늘처럼 눈에 띄지 않는 사소한 규제가 예기치 못한 큰 파급력을 가져올 수 있다. 최근 특허청의 규제개혁 성과 중 적절한 사례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지식재산(IP) 담보대출이 본격화되면서 부실대출건도 일부 나오는 모양새다. 초창기 IP금융은 부실대출 손해를 은행이 떠안는 구조가 문제였고, 이를 반면교사로 삼은 게 IP회수지원펀드다. 담보특허를 매입, 처분해 손실에 충당하도록 특허청과 은행권이 함께 자금을 대 대비했기에 이번엔 문제없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문제는 정작 은행이 채무불이행시에 특허권을 넘겨받기 위해 신청할 때 발생했다. 특허권도 재산권이다 보니 권리관계가 변동되는 건의 서류심사는 매우 엄격한 편이다. 대표적인 게 인감증명서(신청일부터 6개월내 발급)다. 특허양도가 권리자의 진정한 의사임을 확인하기 위한 건데, 보통의 양도계약 상황을 감안하면 타당한 규제다.

특허담보 대출계약은 좀 특수하다. 직접적인 특허양도계약은 아닌데 은행이 실무상 채무불이행시 특허를 처분한다는 동의서를 함께 받기 때문에 일종의 미래조건부 양도계약이다. 그런데, 계약시점과 양도신청 시점 간 간극이 크다는 게 문제였다. 사실 부실이 생기면 채무자와 연락도 안 되는 판국에 6개월 내 인감증명서는 언감생심일 것이다. 하지만 특허청은 권리관계의 안정성을 중시해야 했기에 규정을 내세웠고, 은행도 달리 방법이 없다보니 급기야 은행권 일각에서는 IP금융 무용론까지 거론됐다고 한다.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사소한 인감증명서 하나가 IP금융의 기반을 흔드는 '명마의 혀에 꽂힌 바늘'이 된 형국이었다.

이에, 특허청은 '바늘'을 뽑기로 결정했다. 즉, 대출계약 때 제출한 인감증명서를 인정해주고, 양도신청 때는 채무불이행 사실만 입증토록 부담을 대폭 줄였다. 또한, 계약과 동시에 그 사실을 특허등록원부에 공시하도록 해 향후 특허처분에 대한 채무자의 예측가능성을 높였다. 은행의 고충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되, 한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을'의 입장인 채무자도 함께 안배한 결과였다. 법령개정도 속전속결로 진행해 입안에서 공포까지 4개월도 채 안 걸렸다.

다행히 은행 측의 호응도 좋다고 하니 IP금융이 한층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됐을 듯싶다. 이 같은 사례처럼 혀에서 바늘을 뽑아 명마로 탈바꿈시킨 주몽의 지혜가 지식재산 규제현장 곳곳에서 발휘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영대 특허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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