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면진산업 현황과 방향

경주 지진으로 지진 공포가 엄습했다. 시간이 흐르며 공포의 강도는 약해졌지만 우리나라가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님은 명확해졌다. 예측불가의 지진을 대비하기 위해 각종 대책들이 우후죽순 쏟아진다. 그동안 간과했던 내진보강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지진에 견디는 능력을 높이는 내진보강은 당위성 못지 않게 내용과 방향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내진 분야의 문제점과 대안으로 면진산업 육성 필요성 등을 짚어본다.

◇지진 대비법 내진·제진·면진=우리나라 지진·화산재해대책법에 따르면 내진보강은 지진으로부터 각종 시설물이 견딜 수 있는 성능을 향상시키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우리나라 국내 건축물의 내진설계 의무규정은 1988년 최초 도입됐다. 당시 내진설계 의무적용 대상은 6층 이상 또는 연면적 10만㎡ 이상의 건축물로 1995년 6층 이상 1만㎡으로 변경됐다. 내진설계 의무적용 대상 건축물 범위는 2000년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이상 건물, 2005년 3층이상 1000㎡, 2015년 3층 이상 500㎡로 꾸준히 확대됐다. 의무적용 대상 건축물들은 지진구역 Ⅰ·Ⅱ를 구분해 재현주기 2400년의 지진(진도 7)에 견딜 수 있는 내진설계 기준을 적용했다.

지진·진동에 대비하는 방법은 내진, 제진, 면진 세가지로 구분한다. 내진은 구조물 자체가 지진에 저항할 수 있게 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진은 구조물에 별도 장치를 설치해 감소시키는 것을 지칭한다. 면진은 지반과 구조물을 분리해 지진력 전달을 감소시키는 방법을 뜻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내진설계는 건축물의 뼈대(철골)나 기둥의 재질 혹은 두께 등을 단순 강화해 진동 발생시 주요 골격이 버텨 붕괴되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실제 지진이 일어나면 주요 골격의 버팀 여부와 관계없이 진동으로 인한 골격 외 부분의 이격이나 손상, 흔들림으로 건축물 내부의 기자재 및 인명 피해가 그대로 발생될 수 있는 우려가 높다. 한마디로 건물은 외관상 멀쩡해도 내부 흔들림으로 2차 피해는 막을 수 없는 한계이다.

지진상습지대인 일본은 관동대지진(1923년) 이후 처음 내진기준을 제정했다. 이후 도카치오키지진(1968년)과 미야게켄오키지진(1978년) 등 대형 지진 피해를 거듭하며 1981년 건축기준법 시행령의 구조계산 규정을 개정해 지금까지 적용하고 있다.

'신내진설계법'이라 불리는 이 기준은 과거에 고려하지 않은 지반과 건물의 동적인 특성, 구조부재의 종국강도에 기초한 대지진동 시 설계 등의 항목을 포함한 완성도 높은 내진기준으로 평가 받는다. 법령은 내구연한 중의 중지진동에 대해 건축물 기능을 유지할 것, 대지진동에 대해 건축물의 부분 균열 등 손상이 발생해도 최종적으로 붕괴를 방지함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본 법령과 비슷하다.

◇면진 빠진 내진보강=일본은 내진설계 기준을 한층 강화했음에도 1995년 효고켄남부지진(고베지진)에서 신내진설계법을 준수해 준공한 건축물들에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일본은 단순 주요 골격의 강화를 통한 붕괴를 막는 것이 지진 피해를 막는데 최선이 아님을 절실히 체감했다. 또한 내진설계와 더불어 지진에 대비하고자 진행한 수많은 연구개발 결과물 중 하나인 면진받침(LRB)을 적용한 건축물이 지진에도 붕괴가 되지 않음은 물론 외벽의 피해나 내부 기자재 및 인명피해, 재산 피해가 최소화 돼 지진 후에도 기능을 충분히 유지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 1995년 이전에 중요도가 높은 데이터센터 등 일부 건물에 국한해 적용하던 면진제품 및 시스템을 고베지진 이후 준공한 대다수 구축물 및 건축물에 적용했다. 현재 일본 공공기관 및 민간 건축물의 90% 이상이 면진받침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 면진 업계의 설명이다.

국내는 어떨까? 우리나라는 지진의 안전지대라는 인식과 면진적용에 따른 비용부담을 앞세워 내진설계 기준 준수에만 치중했다. 건축물에 면진기법 적용시 전체 건축비의 약 5% 정도가 추가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용 상승과 면진의 이해 부족을 감안해도 일본이 정부차원의 면진관련 규격, 인증, 제도를 정비하고 관련 업체 및 제품 고도화를 추진해 지진 뿐만 아니라 안전에 대비하는 흐름과 크게 대비된다.

일본은 사단법인 일본면진구조협회(JSSI, Japan Society of Seismic Isolation)가 2004년 12월 24일부터 국토 교통 대신 지정 성능 평가 기관으로 건축 기준법에 근거한 성능 평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JSSI의 중요 업무 가운데 하나가 면진 재료 등 건축 재료의 성능 평가이다. 우리나라는 JSSI 같은 면진 재료의 성능 평가를 담당할 인증기관은 물론 인증기준 등도 없어 관련 산업 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제도의 허점 때문에 면진적용률도 낮아 면진구조를 도입한 국내 건축물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당장 안전을 위해 공공시설물이나 민간건축물의 내진성능 확보율을 높이는 것도 시급하지만 지금처럼 면진적용을 외면한 채 단순히 구조물 자체가 지진에 저항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권장하는 것은 '반쪽 안전' 뿐이라는 지적이다.

면진 업계 관계자는 "경주 지진을 거울삼아 면진 분야가 취약한 국내 건축물 및 관련제도 문제점과 위험성을 정부가 더 이상 방기하지 말고 하루 빨리 정비해 일본에 뒤쳐진 관련 산업의 기술 및 산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평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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