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들 면면을 보고 싶은 국민 여망 부응' 대통령 자질과 지식 시험대 아닌 '정치 쇼' 실재보다 이미지 중시 '가짜 사건'의 시대'

김덕호 한국기술교육대 문리HRD학부 교수
김덕호 한국기술교육대 문리HRD학부 교수
드디어 2016년도 미국의 대통령 선거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TV토론이, 현지 시간으로 9월 26일 저녁에 열렸다. 토론 직후 미국의 주요 언론기관 대부분은 그리고 여론 조사 또한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를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이 1차 토론에서 완승했다고 클린턴의 손을 들어주었다.

클린턴은 명문대 출신답게, 정계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사답게 사회자의 질문에 외운 것처럼 모범답안을 얘기했으며, 가방 끈이 부실한 트럼프는 벼락치기 공부라도 했어야 했는데 의외로 준비가 부족했다고 논평을 쏟아놓았다. 게다가 그녀가 이성적으로 차분히 답변을 한 반면, 그는 후반부에 가서는 감정을 드러내면서 상대방을 무시하는 듯한 몸짓과 흥분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보았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의 대선전에서 TV토론이 시작된 것은 1960년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과의 대결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미지를 통한 싸움이었다. 왜냐하면 TV를 통해 영상이 보여주는 대로 그것이 사실일거라고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믿었기 때문이다. 당시 닉슨은 흑백 TV 출연하기에는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었다. 케네디가 젊고 낙천적으로 보인 반면, 닉슨은 나이 들어 보이고 너무 심각한 표정을 지어 비관적으로 보였다. 게다가 그는 피부가 너무 얇아 수염조차도 TV 카메라에 낱낱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수염이 많이 자란 것처럼 보여 케네디와는 달리 말쑥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덕분에 그는 시청자들에게 케네디와는 달리 부정적 이미지를 깊게 남겨 주었다. 그리고 이 최초의 TV토론은 수많은 유권자들을 케네디 진영으로 넘겨주어 1960년 선거에서 닉슨이 대통령 선거에서 지는데 상당히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이 토론회는 사실상 당시 인기를 끌던 퀴즈쇼의 포맷을 거의 그대로 복사한 프로그램이라고 역사가 대니얼 부어스틴은 주장했다.

퀴즈쇼가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것은 누가 얼마 만큼의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퀴즈쇼가 만드는 분위기, 예컨대, 동원된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과 열광, 쇼에서 우승했을 때 받아가는 상품을 감시하는 분위기의 경찰 등 이른바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아우라` 같은 것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부어스틴은 이러한 퀴즈쇼와 나아가 TV토론이야말로 `가짜 사건(pseudo event)`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가짜 사건`은 "인공적 사실"이며 나아가 진실도 허위도 아니다. 아니, 진실과 허위의 경계 그 자체의 의미를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짜 사건`은 이미지가 실재보다 더 중요한 사회에서 벌어진다. 미국문명이 자랑하는 놀라운 시각문화의 발전 덕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대선 TV토론 또한 누가 대통령으로서 제대로 된 자격이나 자질을 갖추었느냐를 판단하는 소중한 기회 라기보다는 오히려 누가 돌발적 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침착하게 스트레스 관리를 했느냐를 시청자들은 보고 있다. 또한 2분이라는 제한된 짧은 시간 내에 정답이 있는 양 정답처럼 말해야 하는 능력을 판단하고 있다. 이런 과정이 미국의 대통령직이 요구하는 덕목과 얼마만큼 불일치하는지는 사리분별이 분명한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번 1차전 TV토론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이미 누구를 뽑을 지를 결정해놓았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판단에 맞는 답변에만 귀를 기울일 것이며, 그들의 지지자가 실수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그 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부동층만이 이러한 토론을 통해 자신에게 각인될 이미지로 판단하려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깊숙이 `가짜 사건`의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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