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을 가진듯 살아가는 삶 욕망과 운명 사이 수없는 고민 복잡한 정체성 현대인의 초상

탈무드 중에 이런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한 교수가 강의를 하던 중 학생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만일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아이가 태어났다면, 이 아기를 한 사람으로 세어야 하는가, 아니면 두 사람으로 세어야 하겠는가?" 그러자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말했다."머리가 둘이라 하더라도 몸이 하나라면 한 사람으로 세어야 합니다."

또 다른 학생이 말했다. "머리 하나를 한 사람으로 세어야 합니다." 이에 교수는 다음과 같은 답을 내렸다. "만약 한쪽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부었을 때, 다른 쪽 머리도 비명을 지른다면 한 사람인 것이고, 다른 쪽 머리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다면 이것은 두 사람인 것이다."

우리가 사는 복잡다단한 세계에서는 각기 서로 다른 두 개의 머리를 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지 못한 두 머리가 매일 다투는 것은 아닐까? 주문처럼 `나 자신을 찾아야 해!`를 외고 다니면서 두 개의 얼굴로 사는 세계는 기실 그로테스크한 우리의 현실이 아니라고 부인하긴 어렵다.

나이면서도 내가 되지 못한 두 개의 머리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자아이면서도 타자인 우리는 우리 안의 우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몽환적 세계는 마치 꿈과도 같아서 자신이 바로 옆에 있어도 부재를 인지하는 깊은 공황감으로 인해 우리를 돌이킬 수 없는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게 한다.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세이렌이란 또 어떤 존재인가? 치명적인 아름다움으로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며 우리를 죽음의 세계로 유혹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하나의 몸에 두 개의 머리, 그는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귀 기울이는 머리와 그 반대편에서 자아 정체성을 찾으려는 또 다른 머리. 그들의 존재는 각기 다른 욕망의 얼굴과 따뜻한 영혼의 말씀으로 우리의 몸을 지배하고 있다. 깊디깊은 잠의 늪에서 깨어나니 목에 또 다른 괴물 같은 머리가 돋지나 않았는지 여기저기 잘 더듬어볼 일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치명적인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우리들의 익숙한 현실의 모습이다. 출구 자체가 봉인된 문짝 하나 없는 어둠의 세계에서 한 몸의 두 머리가 서로 물끄러미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다. 이 머리 중에서 `우리 여기서 나가자`고 말하는 머리는 아름다운 세계를 갈망하는 진정한 자아의 얼굴이다. 이런 머리라면 파편화된 세계의 본질을 직시하여 새롭게 재현하려는 꿈의 머리일 것이다.

이에 반해 `나는 나갈 수 없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머리라면 세계의 본질이란 비극적 실존이라는 명제를 수락하는 자조적인 머리일 것이다. 여기서 나가자 머리는 매일 외쳤고 다른 머리는 고막이 찢어져라 세이렌의 노래를 따라 죽음이란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는 반목의 시절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계의 실상인 것이다. 더 나아가 머리가 하는 말을 머리만 듣는다면 과연 그의 현실은 어찌될 것인가. 결국 신기루와도 같은 꿈을 꾸던 하나의 머리는 다른 머리와의 반목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을 비틀어 죽게 될 것이다. 세이렌에 빠진 머리가 부르는 노래를 죽은 머리만 듣는 세계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살아있는 머리가 욕망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몸이라면 죽은 머리는 순수한 영혼의 다른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우리 세계의 비극은 아무리 분리하려고 발버둥을 쳐도 결국 샴쌍둥이와도 같은 한 몸이라는 실상의 발견에 있다. 하나의 몸에 두 개의 머리로 싸우는 모습이란 가히 불가해한 현대인들의 초상과도 같다. 이러한 괴물이 장악한 세계가 우리의 현실이라면 우리들의 유토피아 건설에 대한 열망은 한낱 도로에 그칠 수밖에 없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을 `내던져진 존재`라고 정의한다. 운명을 잡아당기는 욕망의 힘 앞에서 어떤 이는 속절없이 끌려가고, 또 어떤 이는 그 힘을 거슬러 가며 자신의 운명을 기획한다. `던져짐`과 `던짐` 사이에서 흔들리는 게 두 머리의 싸움인 것이다. 세이렌의 노래에 취한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이 진리라고 고백할 것인가는 각자 선택의 몫이다.

강희안 배재대 주시경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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