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오디세이] "근현대 예술 총본산 내포, 역사유산·관광자원화해야"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내포문화의 우수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빈운용 기자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내포문화의 우수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빈운용 기자
◇바다와 뫼가 만나니 숱한 인물과 예술이 나왔다. 바로 내포(內浦)문화다. 백제 부흥에 나선 흑지상지부터 최영 장군, 사육신 성삼문, 추사 김정희, 만해 한용운, 김좌진 장군, `상록수`의 심훈, 명무 한성준은 서해와 가야산이 어우러져 배출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서쪽은 큰 바다이고, 북쪽은 경기도 바닷가 고을과 큰 못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고 했다. `택리지`에 보이는 말이다. 또 동쪽은 큰 들판이고, 남쪽은 오서산에 가려져 있는데 가야산 산줄기 앞뒤의 10고을을 내포라 한다고 했다. 오늘날의 홍성과 결성, 해미, 서산, 태안, 덕산, 예산, 신창, 면천, 당진이 그 곳이다.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내포에 주목하고, 문화자원화 하는 데 헌신해왔다. 특히 홍성 출신으로 한국춤의 뿌리인 한성준 선생(1874-1941)의 춤 정신과 예술적 업적을 기리고, 전승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성 교수는 "근현대 한국 전통공연예술 발전에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긴 분들이 내포에서 배출됐다는 건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며 "내포만의 전통예술 콘텐츠를 역사유산화하고 관광자원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담=송신용 서울지사장

-내포문화의 역사적 의미를 설명해달라.

"알다시피 내포는 포구가 내륙 안으로 들어와 있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내포지역은 근현대 예술의 총본산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내포지역에 잔존하는 전통 예술을 일컬어 중고제 혹은 내포제라고 한다. 충남 서북부 지역의 독특한 지역적 특성을 바탕으로 문화와 예술이 만개했던 거다."

-한국 전통춤의 뿌리가 되기도 했는 데.

"내포제 전통춤은 정갈한 맛이 특징이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미학이 서려있다. 단아하고 부드러운 내포의 지형적 특질은 한성준 춤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러한 특징이 손녀딸 한영숙에게로 오롯이 이어졌다. 내포제 전통춤의 고유한 특성을 전승해야 한다. 내포문화와 내포지역의 전통예술에 특별한 관심을 가질 때다."

-내포문화 중 한성준의 춤에 천착하는 이유가 있나."

"한성준은 우리 춤의 뿌리이자 아버지와 같은 분이다. 단지 순수 전통춤 계열뿐만 아니라 창작의 지평에까지 영향을 미친 화수분과 같은 존재다. 한성준을 제외하고 한국 근현대 무용사는 성립될 수 없다. 2014년 탄생 140주년을 맞아 선생의 업적과 예술 혼을 기리기 위해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을 창설했다. 일회성 공연 위주가 아닌, 실기와 학술이 병행된 이른바 춤 문화유산의 기록적 가치 창출, 공연과 학술을 횡단하는 춤 공연문화의 새로운 전형 창출을 표방하고 있다."

-한성준의 무용사적 의의는 무언가?

"한성준 선생은 충남 홍성의 세습무가 출신이다. 이른바 `흙수저`인 셈이다. 8세 때 춤과 장단, 줄타기 등 민속예능을 익히고 내포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서울무대에 입성하면서 당대 최고의 명고수로 이름을 얻는다. 전통음악의 보급과 확대, 조선음악무용연구소 설립을 통해 조선춤을 보존 계승하는데 주력했다. 또 100종목에 달하는 전통춤을 집대성하고 무대양식화하는 업적을 남겼다. 일제 때 세계적 신무용가인 최승희, 조택원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 한영숙과 강선영, 이동안, 김천흥, 장홍심 등 기라성 같은 전통 춤꾼들을 배출했다. 최고 업적은 우리 민족 고유의 춤과 가락을 발굴하고 집대성해 극장무대예술로 정립했다는 점이다. 전통시대 마당이나 뜰에서 추던 춤을 극장무대예술로 승화시킨 분이다. 한국 춤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은 위대한 분이다."

-주요 기념 사업을 소개한다면.

"그동안 묻혀 있어 아쉬웠다.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은 선생의 예술사적 업적과 춤 정신을 반추해 문화유산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미래 춤 유산으로 물려주자는 데 목적을 뒀다. 인간문화재급 명무 공연과 더불어 국내외 학자들이 참여하는 학술심포지엄, 한성준 고향탐방, 춤 체험, 회고와 증언, 영상다큐멘터리 제작 등 다채로운 행사를 펼치고 있다."

-동아시아에 끼친 영향도 컸다는 데.

"그렇다. 일본과 중국에까지 영향력이 미쳤다. 올해 초 신무용가 조택원이 한성준에게 전통학춤을 배워 창작한 `학`의 악보가 근대음악가 다카기 도로쿠의 일본 자택에서 발굴돼 이를 토대로 한·일 합동 복원, 재창작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한성준 춤의 아시아적 확장의 의미를 반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앞으로 어떤 사업을 전개할 계획인가?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이 올해 3년째를 맞았다. 그만큼 책임감이 크다. 올해의 콘셉트는 한성준 춤의 복원과 외연 확장으로 설정했다. 앞으로 선생의 춤을 복원·재현하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또 지속적으로 공연과 학술의 장을 마련해 한성준을 중심 축으로 한민족무용의 협력과 교류, 연대를 모색하는 행사를 구상하고 있다."

-한성준 고향인 내포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는 데.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은 원래 중앙과 지역에서 이원적으로 치른다. 지역행사는 20일 내포에서 전석 초대 무료공연으로 열린다. 우리시대 최고의 춤꾼들이 우리 춤의 진면목을 선사해 의미가 크다고 본다. 지난 주 충남도청 문예회관을 방문했는데 대한민국 최고의 명인들이 출연한다고 극장기술스태프들이 놀라더라. 우리 무용계에서 흔한 일이 아니다. 우리 춤의 시조와 같은 분이기에 최고 수준의 명무들이 기꺼이 재능기부에 동참하는 게 아닐까."

-어떤 무용가들이 참여하나?

"한국창작춤의 대모인 김매자 선생과 박재희 청주대 명예교수, 정인삼 경기도 무형문화재(제56호), 임현선 대전대 교수, 윤미라 경희대 교수, 정혜진 전 서울예술단 예술감독, 배상복 전 제주도립무용단 예술감독, 김충한 전 정동예술단 예술감독이 무대에 오른다. `살풀이춤`과 `태평무` 등 한성준 선생의 예술 혼이 면면이 이어져오는 작품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 또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애리씨와 맹은섭 홍주한빛무용단장, 풍물패 이권희와 뜬쇠예술단이 출연한다."

-소개할 만한 다른 내용은 없나?

"공연 다음날인 21일 출연자들이 불교문화유산의 성지인 가야산 보원사터를 방문한다. 한성준은 10대 후반 수덕사에 머물며 춤과 장단을 터득하고 만공 스님과 깊은 교유 속에 `근대예술가`로서 정신적 자양분을 축적한 것으로 알려진다. 내포지역 불교문화와도 깊은 인연의 끈으로 연결돼 있다."

-지난 2006년 국내 최초의 춤자료관 연낙재(硏駱齋)를 개관했는데.

"벌써 10년이 됐네. 사재를 털어 서울 대학로에 5층짜리 작은 건물을 마련했다. 그 해 원로 무용평론가이자 월간 `춤`지 발행인 조동화 선생이 평생 수집한 근현대 무용관련 자료를 기증 하셔서 춤전문자료관으로 문을 열었다."

-자료 정리는 어떻게 하나?

"쉽지 않다.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34·27·7㎝인 종이상자를 제작해 자료를 그 안에 무용가·단체·행사 별로 분류해 담아둔다. 체계적인 분류와 디지털화 등이 당면과제다."

-충청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성준 선생은 서산의 심정순가(家)와 오랜 세월 깊은 교유 속에서 활동했다. 심정순 집안은 근현대 국악명문가로 5대에 걸쳐 무려 7명에 달하는 전통예인을 배출했다. 국민가수 심수봉이 심정순의 손녀딸이다. 또 한성준 선생의 손녀딸은 명무 한영숙이다. 이들이 약속이나 한 듯 내포에서 배출된 건 무얼 시사하겠나. 그 업적을 역사유산화하고 관광자원화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생가복원과 한성준 이름을 내건 국립춤전문공연장 건립, 국립국악원 분원 설립 같은 다양한 플랜을 추진할 수 있을 거다. 문화예술인 선양사업은 민(民) 관(官), 예술가가 삼위일체가 돼 추진해도 성사되기 쉽지 않은 일이다. 한성준을 브랜드로 한 국립춤전문공연장 설립으로 결실을 맺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성기숙 교수는

1990년대 초·중반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전국의 굿판과 농악, 민속예능판을 현지조사하다가 한성준의 춤에 제대로 빠졌다. 가는 곳마다 최고의 명고수이자 명무로 한성준을 꼽았기 때문이다. 사실 인연의 끈이 없지는 않았다. 서산여고 무용반 시절 소녀 기숙은 서울을 왕래하면서 춤을 배웠다. 홍성 갈산리를 지나야 했는 데 바로 선생이 태어난 마을이었다.

월간 `무용`에 한성준 발굴기사를 연재한 것을 시작으로 그 업적과 예술 혼을 기리고, 전통춤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을 창설하는 등 기념사업을 본격화했다. 무용평론가와 이론가로 활동하면서 한성준의 존재와 위대함을 더욱 절절히 알게 됐고, 우리 전통무용의 맥이 올곧게 전승되도록 힘을 쏟았다. 내포제 전통춤의 올바른 보존과 전승, 이론적 연구와 기록화에 이르기까지 공연과 학술이 융합된 새로운 콘셉트로 접근해 문화계의 눈길을 사로 잡기에 이른다. `오래된 미래, 내일의 유산, 한성준 춤의 원형과 재조명`을 비롯 `전통과 현대, 경계를 넘어, 한성준의 존재론적 위상 재발견`, 화보집인 `위대한 유산, 한성준의 춤, 기록화의 여정`을 냈다. 2014년 한성준예술상을 창설했다.

충남 서산이 고향으로 수원대 무용과를 졸업한 뒤 중앙대 대학원과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석·박사)를 마쳤다. 1세대 무용학자인 정병호 교수를 사사하며 무용사 연구에 뛰어 들었다. 1996년 월간 `객석` 예술평론상에 당선되면서 무용평론가로 등단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와 춤전문자료관인 연낙재 관장을 맡고 있다. 연낙재 소장품으론 진주목사 정현석이 쓴 `교방가요`(1872년)와 최승희의 `나의 자서전`(1937년) 등과 함께 근대 시기 공연 포스터와 전단·입장권 같은 희귀 자료가 수두룩하다. 문화예술계의 마당발이다. 한국춤평론가회장을 역임했고, 문화재전문위원(문화재청)과 서울시·경기도 문화재위원, 국립무용단 자문위원,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초대이사를 지냈다. 지금도 세종문화회관 이사와 한국전통공연예술학회 부회장 등으로 뛰고 있다. `춤의 현실과 비평적 인식`, `한국춤의 역사와 문화재`, `춤의 위기와 전망` 등 스무 권 가까운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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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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