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마비

◇대전 서구 도안동에 사는 김모(35·여) 씨는 요즘 아버지(82)를 만날 때마다 한숨만 나온다. 열흘 전부터 아버지에게 나타난 안면근육 마비가 풀리지 않고 있어서이다. 찬 바닥에서 잠을 자 생기는 단순한 질환이라고 생각했는데 진료를 받자 영구장애까지 올 수 있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아버지가 입원하고 퇴원한 지 3일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아버지의 표정은 부자연스럽다. 식사를 하다 자주 흘리거나 개그 프로그램을 보며 웃는 것도 힘들어 한다. 대개 1년이 지나면 좋아진다고 하지만 영영 마비가 풀리지 않을까 매일이 고통스럽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환절기 환자가 급증하는 벨마비에 대해 최수영 대전 대청병원 신경과 부장의 도움으로 알아보자.

◇80대 이상 환자 더욱 큰 폭으로 늘어=김 씨가 걸린 질병은 얼굴 한 쪽이 마비되는 특발성 안면신경마비 `벨마비(Bell Palsy)`이다. 많은 이들이 `구안와사`로 알고 있는 그 질환이다. 영국인 해부학자인 찰스 벨의 이름을 따 `벨마비`라 부른다. 이 질환은 눈과 입의 움직임과 미각, 분비기능을 담당하는 7번 뇌신경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다. 눈이 완전히 감기지 않아 눈물이 흐르거나 음식을 먹을 때 잘 흘린다. 간혹 통증이 있기도 하고 미각과 청각장애를 동반한다. 열감기에 걸려도 마비된 쪽은 반대쪽에 비해 체온이 더 높은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말초신경에 염증이 생긴 경우가 가장 많다. 이것을 람세이헌트(Ramsay-Hunt) 증후군이라 부르는데 원인균으로는 헤르페스 조스터가 가장 흔하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밝혀진 특별 전조증상은 없다.

◇노령인구 증가하며 벨마비 환자도 늘어=벨마비로 병원을 찾는 이들도 해마다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0년 6만 2275명이었던 환자가 지난해에는 7만 1562명으로 14.9% 증가했다. 성별로는 여성이 4만 180명으로 남성(3만 1382명)보다 많았고 5년 전보다 각각 13.3%와 17% 늘었다. 연령별로는 50대(1만 8826명), 40대(1만 3826명), 60대(1만 3461명) 순이었다. 대부분의 연령에서 증가한데 반해 10대 미만과 10대 환자는 각각 82명과 268명 줄었다.

눈에 띄는 것은 노인인구에서의 증가율이 대폭 늘었다는 점이다. 80대 이상은 5년 전인 2010년에 비해 70% 증가했다. 70대도 30%, 50대 29.5%, 60대 22.4%로 노인인구에서 평균 이상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벨마비 환자수가 꾸준히 증가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낫는 병`으로 인식하던 과거와 달리 증상을 경험한 환자가 초기에 적극적으로 병원을 방문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면역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질환 특성상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특발성 안면신경마비는 피로와 스트레스, 육체적 과로, 과다한 카페인 섭취와 음주가 주된 원인이다.

노인인구에서의 증가폭이 큰 것은 평균수명이 증가하고 노인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발생한 현상으로 분석된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현재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전체 인구인 5080만1405명 중 13.5%에 해당하는 686명3500명으로 전년 대비 0.4%, 10년 전보다 4% 증가했다.

◇대부분은 호전되지만 바이러스성 질환은 후유증 남기도=벨마비의 진단은 별다른 검사 없이 증상만으로도 확인 가능하다. 귀 주변에 수포 또는 물집이 있는지, 힘을 줘 눈을 위로 치켜떴을 때 이마 주름에 변화가 있는지를 보고 헤르페스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인지, 아니면 말초신경 장애로 인한 것인지를 가늠한다. 헤르페스 바이러스는 대상포진 바이러스로 흔히 수포를 동반한다. 이마 주름은 양쪽 모두에서 생기지만 눈과 입의 변화만 다르면 중추신경 이상일 확률이 높다.

발병 원인이 무엇이고 중추신경 손상이나 뇌신경 이상 여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신경전도검사와 피검사를 실시하며 MRI와 같은 영상검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10세 미만의 어린이는 중이염으로 인해 생길 수도 있는 만큼 귀검사가 필수이다. 나트륨과 칼륨, 칼슘과 같은 전해질 불균형으로도 증상이 야기될 수 있고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서도 발생하므로 정밀 검사를 통해 정확한 원인을 찾는 것이 완치에 도움이 된다.

대부분의 환자는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아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상태가 호전된다. 하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돼 발생하는 람세이헌트 증후군의 경우 시간이 지체될수록 후유증이 남을 가능성이 크다. 한 쪽 얼굴이 마비되는 증상은 같더라도 원인이 다른 만큼 빠른 시간 내에 병원을 찾아 치료받아야 한다. 치료는 스테로이드제제와 함께 항바이러스제제를 투여해 붓기를 빼는 동시에 염증반응을 줄인다. 증상이 처음 나타나기 시작한 4일 이내에 치료를 시작해야 효과가 높다. 증상의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일주일에서 열흘가량의 입원치료를 요한다. 한 쪽 눈이 완벽하게 감기지 않는 환자는 안구건조 또는 각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럴 경우에는 안대를 착용하고 약물을 투여해 눈이 촉촉하게 유지되도록 하고 마사지로 마비된 근육을 풀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전희진 기자

◇벨마비란

안면신경마비를 뜻하는 질환으로 구안와사라고도 불리는데, 입과 눈 주변 근육이 마비되어 한쪽으로 비뚤어지는 증상을 보인다. 벨마비는 말초성 안면신경마비로 뇌졸중·뇌종양으로 인해 발생하는 중추성 안면신경마비(중풍)와는 구분하여 치료한다. 말초성 안면신경마비는 대체로 3-4일에 걸쳐 진행되며 수주에서 수개월에 걸쳐 자연적으로 호전되어 1년 이내에 대부분 회복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완전히 회복되지 않고 후유증을 남기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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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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