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기준, 강자 이익 아닌 국민 특혜엔 책임 따르는 게 이상국가

`부동산과 의료비 의혹`, `화수분 같은 통장`, `과거 음주운전 은폐로 징계 면함`, `인사 검증 실패`, `장관급 아들 특혜` 등등 요즘 우리를 자극하는 공직자의 특혜와 비리 소식이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이런 뉴스도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진다고. 인간이 갖고 있는 특징 중에 하나가 망각이다. 정말 다행이다.

플라톤은 이상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 노력한 철학자다. 고대 그리스 사회도 오늘날만큼이나 엉망이었나 보다. 그러니 기존 세상을 버리고 새로운 이상국가를 건설하려고 했겠지. 한 국가를 건설하는데 필요한 것이 한두 가지이겠는가. 그 중에서 딱 한 가지만 택하라면 무엇이 있을까? 소크라테스는 `거짓말하지 마라`라고 답하고, 이것이야 말로 정의니 법으로 정하자고 한다. 새로운 이상국가를 건설하는데 거짓말하지 않는 것을 정의고 그것을 또 법으로 정하자니. 도대체 무슨 뜻일까?

소크라테스의 얘기를 듣고 있던 트라시마코스는 소크라테스에게 웃기는 얘기하지 말란다. 그리고 정의란 거짓말하지 않느니 뭐니 그런 것이 아니라 `강자의 이익`이란다. 참 재미있는 표현이다. 법을 정하는 사람은 강자다. 그리고 그 강자는 법을 정할 때 자신이 손해 보는 그런 법은 절대로 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이다. 물론 이 얘기를 들은 소크라테스는 법은 강자의 이익이 아니라 모든 백성의 이익을 위해 제정되어야 한다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흥분한다.

지난 8월 31일 헌법재판소에서 참으로 충격적인 설문조사 내용을 발표했다. 우리나라 국민 다섯 명 중 네 명은 법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7월 15일부터 한 달 동안 헌법재판소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상 권리가 잘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81%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 중에서도 22.8%는 `전혀 아니다`라고 답했다고 하니 법은 절대로 국민 편이 아닌 것 같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헌법상의 권리가 잘 지켜지고 있지 않을까? 그 원인은 첫 번째가 사회지도층의 특권의식이었다. 그 뒤로 불평등한 사회구조, 원칙 없는 법 집행이었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기본권 침해에 대한 문항도 있다. 설문에 응한 사람 중 30.5%가 기본권 침해를 당했다고 했다. 침해받은 기본권은 인간답게 생활할 권리부터 사생활과 통신, 그리고 집회·결사의 자유를 다음 순으로 꼽았다. 문제는 이런 기본권이 침해당했음에 불구하고 헌법소원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람이 무려 67.1%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오히려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부터 심지어는 헌법소원 제도가 있는 줄조차도 몰랐다는 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응답을 하였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 소크라테스는 절대로 거짓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정의로 삼고 그것을 가장 기본적인 법으로 삼자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기 때문에 약자를 위한 법은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두 사람의 주장은 팽팽하게 이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설문조사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 법도 소크라테스 편이 아니라 트라시마코스 편이다. 방송과 뉴스를 통해 전달되는 많은 얘기를 듣거나 보면서 일반 서민이 느끼는 것은 그 말이 진실이니 아니리를 넘어 공직자의 특혜라는 생각만 한다. 소크라테스와 트라시마코스의 주장 중 누구 말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특혜와 책임이란 단어를 넣으면 답은 의외로 쉽게 얻을 수 있다. 트라시마코스의 주장 속에서 우리는 특혜는 있고 책임이 없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주장 속에서 책임 있는 특혜를 생각해 본다. 기득권자 혹은 공직자의 특혜와 책임 문제를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서정욱 배재대 심리철학상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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