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자양동 신동원옹 22년째 동네 미화 귀감

그는 대문 앞의 낙엽을 쓸었다. 낙엽을 쓸다 옆집 앞에 쌓인 낙엽이 성가셔 그 곳도 같이 쓸었다. 하는 김에 옆 집의 옆 집도, 그 앞의 슈퍼마켓까지, 동네를 돌며 청소를 했다. 하루 3번씩 한 손에는 빗자루를, 다른 한 손에는 쓰레받기를 들고 집을 나섰다. 무려 22년,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이다. 어느 날은 건너편 초등학교 화단을 보고 시들어가는 꽃이 안타까워 물을 줬다. 그래도 시들함이 가시지 않아 양지 바른 곳으로 꽃을 옮겨 심어줬다. 그 해 더위가 가실 즈음 꽃은 만개했다. 국화였다. 대전 동구 자양동에 사는 신동원(74·사진) 씨의 이야기다.

매일 오전 7시가 되면 신씨는 자양초등학교로 향한다. 밤새 생겨난 쓰레기를 치우고 담배꽁초를 줍는다. 빈병이나 파병, 폐지, 나무로 된 폐자재는 모아뒀다가 폐지나 공병을 파는 이웃들에게 나눠준다. 점심식사를 한 뒤에는 자양초 옆 화단을 가꾼다. 나팔꽃, 맨드라미, 연산홍에 물을 주고 옮겨 심기도 하며 씨를 모아 다시 뿌린다. 덕분에 자양초 옆 담벼락은 자주색 나팔꽃이 흐드러졌다. 모두 그의 손길을 거친 꽃들이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이다.

신 씨는 "집 대문 앞 낙엽을 쓸던 것이 어느새 동네 미화원이 돼버렸네요. 길거리도 깨끗해지고 얼마나 예뻐요. 동네 이웃이나 거리를 지나는 학생들도 좋아하니 그 정도면 충분하죠"라며 입꼬리를 올렸다.

저녁에도 신 씨의 청소는 계속된다. 저녁에는 쓰레기가 더 많단다. 하교 후 자양초 정문 앞을 쓸기 시작해, 자양초 앞 오거리를 돌며 쓰레기를 줍는다. 다시 그것을 모아 분류를 한다. 해가 기울 때쯤 신 씨의 하루도 끝이 난다.

속이 타는 사람은 신 씨의 부인이다. 왜 그렇게 청소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성화다.

재작년에는 대전시 상수도본부에서 전화가 오기까지 했다. 가정집에서 무슨 물을 그리 많이 쓰냐는 것. 그 넓은 화단에 물을 주다 그렇게 된 걸 어찌하겠나. 그런데 부인 또한 너털웃음을 짓는 것을 보니 썩 싫지는 않은 모양새다. 신씨도 덩달아 웃었다.

신 씨는 "수돗물로 물을 줬는데 꽃에 수돗물이 안 좋다 해서 작년부터 빗물을 받아 주고 있지요. 돈도 안 나오고….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부인도) 어쩌겠어요"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신 씨는 어려서부터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살았다. 돈으로 줄 수 없으니 마음과 몸으로 도움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매일매일 가꾼 화단 앞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면 그것보다 행복한 일이 없단다. 자꾸만 각박해져 가는 사회의 모습에 자신의 손길로 조금이라도 변할 수 있다면 그 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덕(德)`의 참 의미다.

신 씨는 "(청소가)별것 아니지만 가장 마음을 안정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몸이 닿는 데까지 할 겁니다. 저도 그렇고 남도 행복하잖아요"라며 말했다. 신 씨는 내년이면 옆동네로 이사를 한다. 그래도 그는 자양초 앞 오거리를 찾을 생각이다. 이웃의 미소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이다. 김대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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