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명예, 권력, 돈, 시간, 기회 등 얻고 싶어도 쉽게 얻을 수 없는 것들을 병역의무 이행을 위해 내려놓았다. 나 자신을 훈련병과 이등병 신분으로 낮췄다"며 지난 봄 병무청에 보낸 수기에 썼다. 병무청은 지난달 31일 박 일병과 같이 병역의무가 없음에도 자진해서 병역을 이행 중인 청년들의 사연을 담은 수기집 `대한사람 대한으로 2016`을 발간했다.

육군 2사단 17연대 소속 박 일병은 31세의 나이에 이등병 계급장을 겨우 뗀 이력만큼이나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박 일병은 미국 뉴욕주 스키드모어 칼리지 철학 교수이다. 미국 영주권이 있어 군에 입대할 필요는 없지만 삶의 의미를 찾아 한국행, 그것도 군입대를 자원했다. 그의 자원입대는 그가 걸어온 길과 궤를 같이 한다. 박 일병은 여덟 살 때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케냐로 건너가 11년간 지냈다.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도 통하지 않아 힘든 시간이었지만 시련을 이겨냈고, 어려운 형편에 열심히 공부해 28세에 미국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됐다. 미국에서 촉망받는 교수가 될 수 있었지만 그가 군입대를 선택한 것은 대한민국 청년에게 군복무가 소중한 경험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는 "대학교수는 사람을 많이 만나고 이해해야 하는 직업"이라며 "군생활을 통해 습득한 경험은 전역 후 미국 대학교수로 돌아갔을 때 아주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군 입대를 `시간낭비`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축구나 농구 게임에 있는 `하프타임`또는 `작전타임`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며 "군입대 전까지 전반전을 열심히 살아왔다면 앞으로 남은 인생의 후반전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작전을 세우고, 한 발짝 물러서서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자신의 가치관과 목표를 되돌아 보자"고 소감을 밝혔다.

박 일병의 이야기 말고도 대한사람 대한으로 2016에는 면제 사유를 극복하고 입대를 자청한 사연들이 가득하다. 질병으로 보충역(4급) 판정을 받았음에도 병을 고치고 군에 입대한 청년, 최종학력이 초졸이라서 병역의무가 없지만 중졸·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군대에 간 청년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병무청은 수기집 2000부를 발간해 대학교 도서관과 재외 공관 등에 배포할 계획이다. 병무청 관계자는 "이번에 나온 수기집이 병역을 이행하는 병사들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에게는 병영 생활에 대한 소중한 지침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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