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王 錫 글雲 米 그림

윤 포수 일행은 중국인 개척마을사람들이 살아있는 죄인을 범의 먹이로 제공한다는 사당으로 가봤다. 사당 뒤에는 고목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그 주위가 피바다가 되어 있었다. 죽은 사람은 40대의 중국인이었는데 두개골과 굵은 뼈 몇 개만이 남아있었다. 나머지는 범이 먹은 것으로 보여졌는데 아직도 멍하니 떠 있는 그 눈에 공포가 어리어 있었다. 고목나무에 묶여 있다가 범에게 뜯어 먹힌 그 공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일본군인 그들이 신음했다.

"시나진(中國人)은 본디가 잔인한 민족이지만 이런 짓까지 할지는 몰랐습니다."

윤 포수 일행은 그 두개골의 눈을 감겨주고 굵은 뼈들과 함께 묻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귀신범의 발자국을 추적했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을 단골 먹이로 삼고 있는 그놈은 끝까지 추격할 생각이었다.

귀신 범은 천천히 가고 있었다. 기름진 사람고기를 배 부르게 먹은 놈은 거기서부터는 미리 정해 놓은 목적지가 있는 듯 일정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놀라웠다. 귀신범은 바위산으로 올라가 어느 바위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 굴은 곰의 굴이었다. 지난해에 겨울잠을 자기 위해 불곰이 마련해 놓은 굴이었는데 곰은 습성상 한 번 겨울 잠자리로 사용한 굴은 다시 사용하지 않았다. 작년에 곰이 겨울 잠자리로 사용했던 굴은 그대로 비어 있었는데 귀신범은 그걸 알고 곰의 굴을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곰이 겨울 잠자리로 마련한 굴은 눈바람을 막아주고 햇볕이 스며드는 보온지였다. 귀신범은 거기서 무서운 만주의 추위를 보낼 생각이었으나 윤 포수 일행이 추적해오는 것을 알고 그곳을 떠난 것 같았다. 그 일대 산줄기에는 여우 오소리 등이 마련한 바위굴이나 토굴들도 있었다.

윤포수일행의 등뒤에서 불어닥치고 있던 돌풍은 거기서부터 한층 심해졌는데 귀신범은 그 무서운 폭풍을 피해 추위나 조금 덜한 남쪽 조선땅으로 건너가려는 것 같았다.

"놈은 백두산 동쪽 기슭으로 가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두만강 물이 흐르고 있으나 몇 십 년전부터 나루터에서 강을 건네주는 백 영감이 있습니다."

백두산 기슭에서 귀신범이 포효하고 있었다. 놈은 마치 그런 폭풍을 보내는 산신령에게 화를 내듯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놈은 포효만 했을뿐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자기를 추적하고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자기 모습을 철저하게 숨기고 있었다. 역시 귀신범이었다.

윤 포수 일행은 다음날 정오께 두만강을 나룻배로 건너갔다. 백 영감은 머리가 하얗게 되어 있었으나 여전히 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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