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세대 희생 경제대국 이뤄 세대간 갈등의 골 더욱 깊어져 일본처럼 경로의날 제정 필요

어느날 생각해보니 부모님의 얼굴을 자세히 본 게 언제인가 싶었다.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의 목소리와 이미지만 기억할 뿐 부모님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며칠전에야 부모님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팔순이 넘은 부모님의 얼굴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보다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 얼굴 곳곳에 검버섯이 올라와 있고, 주름살은 말린 대추처럼 깊었다. 피부는 탄력이 없어 축 늘어졌다. 그제서야 왜 부모님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았는 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이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게 속상해 일부러 피했던 것이다.

내 어린시절 부모님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교사이셨던 아버지, 군청 앞에서 조그만 가게를 하셨던 어머니는 5남매를 위해 정말 헌신적인 삶을 사셨다. 자식 다섯을 키우시느라 당신들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절약은 몸에 뱄다. 허드렛물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얼굴을 닦고 발을 씻은 물은 화단에 뿌려졌다. 굳이 물까지 아낄 필요가 있느냐고 푸념하면 "너희들은 전쟁과 보릿고래를 겪어보지 않아서 몰라"라고만 하셨다. 대한민국은 압축성장을 하면서 사회적으로 심한 성장통을 겪었다. 하지만 부모님세대의 희생이 없었다면 국내총생산(GDP) 세계11위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젊은세대와 노인세대 간에 극심한 대립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젊은세대들은 노인들에 대해 젊은이들의 등골을 빼먹는 세대, 대한민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벽창호라고 생각한다. 일부 젊은층은 노인세대들에게 대해 강한 반감까지 갖고 있다. 반면 노인세대들은 요즘 젊은세대에 대해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없고, 저축하지 않고 펑펑 쓰기만 하는 베짱이라고 혀를 끌끌 찬다.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리던 나라가 이처럼 극심한 세대간 갈등을 겪는 이유는 고령화와 이념갈등을 조장하는 정치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65세이상 노인인구의 비율은 13.1%로 우리 사회는 이미 고령화사회이다. 문제는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점이다. 지난해 미국 통계국이 발표한 `늙어가는 세계 2015`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이면 우리나라 65세이상 노인인구는 전체의 35.9%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회가 빠르게 고령화될수록 복지예산은 늘 수 밖에 없다. 내년 정부예산안이 사상 처음으로 400조원을 넘어선 것도 눈덩이처럼 불어난 복지예산 탓이다. 2013년만 하더라도 97조원이었던 복지예산이 내년에는 130조원으로 폭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초연금 수령대상자(만65세이상)가 내년에는 498만명으로 늘어난다. 이에 들어가는 비용만 8조원이 넘는다. 복지예산이 늘어나는 만큼 국내 경기 활성화를 위한 사회간접자본(SOC)이나 연구개발비(R&D)에 투입되는 예산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젊은세대들이 노인세대들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갖게 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세대간의 갈등은 정치에서 극에 달한다. 한국갤럽이 8월 4주차(23-25일) 실시한 박근혜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 조사에 따르면 20대와 60대이상의 지지율 차이는 4.4배나 차이 난다. 현 정부 들어 세대간 이념갈등의 정도가 더욱 심해졌음을 보여준다.

국가경제가 어려워지고, 노인층의 인구가 증가할수록 세대간의 갈등은 더욱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세대간의 갈등은 사회적 비용을 키우는 암(癌)적인 존재이다. 가능한 빨리 제거하는 게 바람직하다. 일본처럼 경로의 날을 제정하는 것도 세대간의 갈등을 봉합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일본은 매년 9월 세번째 월요일을 법정공휴일인 경로의 날로 정하고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사회에 힘쓴 노인을 경애하고 장수를 바라자는 취지로 제정했다. 경로의 날을 만든다고 갑자기 세대간 갈등이 사라지고 어른을 공경하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경로의 날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를 확산하고, 일선 학교에서 교육을 통해 어른을 공경하는 분위기를 만든다며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사회적 비용 요인 중 하나인 세대간 갈등은 상당부분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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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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