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또다른 흥행영화 터널 세월호 참사충격 연상

영화는 현실을 24배쯤 과장해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1초에 스물네 장의 사진으로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과장된 사실이기는 하지만 현실에서 발생한 동기가 영화의 스토리로 풀어진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웃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안타까워 한다. 자신의 경험이 스크린에 투영됐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 `터널`은 보는 내내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다. 부실공사, 과도한 보도경쟁을 벌이고 있는 언론, 언론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여론, 언론에 노출되길 원하는 권력자. 그 모든 것이 영화에 녹아 있다.

영화 터널은 재난 영화를 표방한다. 자동차 영업대리점의 과장 정수(하정우)는 큰 계약건을 앞두고 들뜬 기분으로 집으로 향했다. 딸의 생일이라 생일 케이크를 사들고 터널로 진입하는 정수. 터널에 이상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터널 진입 후 한참이 지나서다. 균열이 시작된 터널 천장이 무너지고 큰 콘크리트 더미가 정수의 차를 덮친다. 그렇게 터널이 무너졌다.

정수는 갑자기 무너져 내린 터널 안에 홀로 갇히고 만다. 눈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콘크리트 잔해뿐. 그가 가진 것은 배터리가 78% 남은 휴대폰과 생수 두 병, 그리고 딸의 생일 케이크가 전부다.

하루하루 시간이 가지만 구조대는 터널 안으로 쉽게 진입하지 못한다. 관계부처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하고, 연일 언론에서는 현장 소식을 전한다. 사고 대책반의 구조대장 대경(오달수)은 꽉 막혀버린 터널에 진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지만 구조는 더디게만 진행된다. 정수의 아내 세현(배두나)은 정수가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라디오를 통해 남편에게 희망을 전하며 그의 무사생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현장에서 구조를 위해 일하고 있는 이들에게 밥을 차려주고, 그곳을 찾는 위정자의 곁에 서서 사진을 같이 찍기도 한다. 지지부진한 구조작업은 결국 인근 제2 터널 완공에 큰 차질을 주게 되고, 정수의 생존과 구조를 두고 여론이 분열되기 시작한다.

스크린을 통해 전달되는 정치인들의 행동과 언론의 보도행태에 관객들은 실소를 터트리기 바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정수의 안전은 뒷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짜여진 매뉴얼에 따라 구조작업을 하는 사람도, 대책반을 꾸려 회의를 이끌어 나가는 장관도, 이를 국민들에게 전하는 언론도 각자의 잇속을 찾기 위해 각자의 행보를 할 뿐이다. 그런 모습들은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 한다. 말도 안되는 사고. 민첩하지 대응하지 못하는 정부. 보도에 열을 올리는 언론. 자연스럽게 식어가는 관심. 낯설지가 않다.

장르적 특성으로 영화를 보자면 터널과는 기존 재난 영화들과는 다르다. 거대한 재난, 수많은 희생자, 용기와 기개로 재난을 극복하는 주인공이 등장해야 하지만 터널에는 이런 요소들이 없다. 또 재난 영화의 주인공이라면 어떠한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는 히어로형 캐릭터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 정수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정수가 할 수 있는 일은 구조대장이 알려준 생존수칙을 지키며 버티는 것이다.

꽉 막혀버린 터널에서 가족을 생각하며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살아남는 것, 절망하지 않고 그 안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것이 정수가 해야 하는 가장 큰 미션이다. 한 가족의 가장인 그가 가족 곁으로 돌아가기 위해 극도로 고립된 공간에서 갖가지 방법으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안쓰러운 연민과 공감, 동시에 짠한 웃음까지 불러일으킨다.

연출을 맡은 김성훈 감독은 "인간의 생명은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인데, 희생자의 수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오히려 한 사람이 거대한 재난을 홀로 마주했을 때 외로움이나 두려움은 더 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희생자의 수로 재난의 규모를 재단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생명이 가진 가치를 영화 속에 온전히 담아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김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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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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