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책 쓰는 선비 술 빚는 사대부 김봉규 지음·담앤북스·368쪽·1만7000원

현대사회의 초침은 자꾸만 빨라진다. 목소리로 안부를 건네기보다 몇 개의 단어로 감정을 표현한다. 사회, 경제 등 모든 분야의 흐름이다. 먹는 것도 빨라졌다. 패스트푸드조차도 진화해 자동차에 탄 채 주문을 하고 음식을 받는다. 때문인지, 역으로 슬로푸드가 각광을 받는다. 힐링푸드라는 용어도 생겼다. 음식으로 마음과 몸을 치유한다는 것이다. 미각의 획일화를 지양하는 움직임이다.

2010년 8월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대표적인 이유를 하나 꼽아본다면 유·무형의 전통문화를 지켜온 종가들 덕분이다. 종가의 대표적 문화는 술과 음식을 중심으로 한 음식문화로 귀결된다. 종가에서만 전해 내려오는 고유의 음식과 술은 종가를 탄생시키고 선조들의 삶이 스며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색깔과 특징이 있다는 얘기다.

책은 전국 종가 43곳의 전통음식, 전통 술을 통해 우리의 음식문화를 소개한다. 음식 인문학이 걸맞은 표현이겠다. 조선시대부터 이어 온 밥상, 다과성, 술상, 제사상, 손님상 등 상의 종류 또한 많다. 정성스런 손길이 스며든 음식이다. 푸짐하게 차려한 상은 혀를 자극할 뿐만 아니라 눈으로 요기하는 재미도 덤으로 준다.

국내 전통음식과 술은 스토리가 담겨 있다. 혼자서만 즐기고, 시간을 쪼개 먹는 식사처럼 각박한 현대사회의 식단과는 차이가 있다. 혹자는 명문가의 음식을 보곤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정신이 담겨있다고 표현을 하기도 한다.

책은 각 종가와 관련된 역사적 인물을 통해 미시사를 접하게 만든다. 어부사시가의 윤선도가 빚은 약술이며, 명성왕후 가문에서 대대로 딸에게 전수하는 술인 왕주, 류성룡의 제삿상에 오르는 약과, 녹두장군 전봉준을 일으킨 술 죽력고 등 내림음식의 의미를 아로 새긴다. 음식으로 알아보는 우리 조상들의 선비 정신, 명문가의 정신이다.

종가 문화를 지키는 것은 종손만의 의무가 아니다. 종손, 종부, 남녀를 불문하고 내림음식와 내림술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저 아들과 딸에게, 손자, 손녀에게, 또 그들의 자식에게까지 다양한 갈래를 통해 현대로 전해지고 있다. 전통 부각을 판매하는 거창 사증종가, 죽염장으로 유명한 담양 양진제 종가 등 기업으로 발전한 종가의 이야기도 살펴볼 수 있다. 저자는 책에서 종가문화는 사라져 가는 소중한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지점이라고 칭한다. 반드시 고급 음식이 아닌 보다 대중성을 지향하는 종가라는 점이다. 미식가와 애주가에게는 더욱이 반가운 책이다. 김대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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