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서 받아보니 폭탄실감 사용많은 내달요금 더 걱정 획기적인 개선책 내놓아야

사상 최악의 무더위가 올여름 국민들을 잠 못 들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무더위 보다 더 짜증나게 만든 게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다. 에어컨이 있어도 맘대로 켜지를 못한다. 폭염보다도 무서운 전기요금 폭탄 때문이다. 평소 한 달에 6만원 하던 전기료가 에어컨을 하루 8시간 켜면 37만원을 훌쩍 넘는다. 말도 안 되는 전기요금 때문에 냉방기는 있어도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업소나 상가에선 문을 열어둔 채 냉방까지 하고 있지만 애꿎은 국민들은 찜통더위 속에 불쾌지수만 높아가고 있다.

이미 8월분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아 든 가정에선 누진제 폭탄을 절감하고 있다. 전달 260kwh에 3만 5000원이었던 요금이 이달 510kwh에 14만 4000원이 되는 식이다. 사용량은 2배인데 요금은 4배 이상 늘었다. 가정마다 벌써부터 9월분 고지서가 더 걱정이다. 무더위로 인해 8월중 사용량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칫 하다간 전기요금 단가(kwh당 원)가 최고 11.7배나 되는 누진제 전기요금을 내야 한다. 누진제를 시행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외국에서도 누진 배율이 크지는 않다. 기껏해야 미국이 1.1배, 일본 1.4배, 대만 2.4배 수준이다.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단가요금이 최고 11.7배나 오르는 누진제는 찾아볼 수가 없다.

끓어오르는 국민들의 원성에 정부와 여당이 7-9월 한시적으로 누진제를 완화해준다고 선심을 썼다. 해당 기간 3개월 동안 가구당 전기요금이 월평균 19.4% 줄어들게 됐다. 누진제 완화는 없다고 버티던 산업통상자원부가 대통령의 한마디에 입장을 바꾸고 허겁지겁 내놓은 대책이다. 산업부의 대책은 현행 6단계 누진제 구간 기준선을 단계별로 50kwh씩 상향조정하는 것이다. 그래봐야 3개월간 합쳐 가구당 평균 2만원 남짓 줄어드는 모양이다. 대책이랄 것도 없거니와 불만덩어리인 누진제에 대한 손질은 전혀 없는 셈이다. 이 같은 임기응변식 땜질로는 한순간 민원을 잠재울지는 모르지만 근본적인 처방은 못 된다.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정책적인 차원에서 결정된 것이다. 많이 쓰는 가정에 높은 요금을 부과해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고 적게 쓰는 저소득 가구의 요금을 낮춰 소득재분배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를테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뤄진 것이다. 처음 시행할 당시의 시대상황에선 효과적인 제도였는지 몰라도 시대가 변해도 한참 변했다. 그 시대 일반 가정의 에어컨 보급률은 20%대였지만 지금은 80%를 넘고 있다. 가정에서 여름철 에어컨 가동은 일상이 됐다. 이러한 일상으로 요금폭탄을 맞는다면 어느 국민이 납득을 할 수 있겠는가. 가정용 누진제로 인한 허탈감은 무엇으로도 채워줄 수가 없는 일이다.

정부는 누진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면 전력대란 등이 우려된다는 옹색한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기사용량은 산업용이 55%이고 가정용은 13%에 불과하다. 13%가 전력수급에 차질을 일으키고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된다는 것도 우습지만 되어서도 안 된다. 실제로 정부가 누진제 완화를 발표한 이후 첫 주말연휴 동안 전력 예비율은 오히려 높아졌다. 가정에서 전기를 좀 더 쓴다고 해도 전체 전기수급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하다는 얘기다. 정부 주장이 얼마나 현실성이 없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전 세계서도 유례가 없는 11.7배 누진제를 그냥 둘 일이 아니다. 여름철 한시적인 요금완화나 누진단계 완화 등으로 어물쩍 넘어가선 더더욱 안 된다. 정부가 한시적으로 요금을 인하해준다고 해도 땜질처방에 그칠 뿐이다. 누진제 폐지나 폐지수준의 근본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일반 가정에선 폭염이나 혹한이 닥칠 때마다 요금폭탄을 피할 길이 없다. 그때마다 한시적인 임시방편 대책을 끄집어 낼 수는 없다. 대증요법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당국이 주장하는 것처럼 전력대란이 걱정된다면 누진제가 아니라 시간대별 전력요금을 차등화 해 사용량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오히려 합리적일 수도 있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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