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앞두고 고통스런 희망 가족·의료진 정확한 사실 전달 의미 있고 편안한 순간 준비를

70대 남성이 `여명이 6개월도 안 되는 말기 암`을 진단받았다. 환자는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밝히고 곧바로 부인과 마지막 여행을 다녀왔다. 사망 한 달 전이었다.

그 후 환자는 가정호스피스팀의 도움을 받아 가정에서 통증을 조절하며 자신의 죽음을 준비해나갔다. 사별 후 부인이 너무 오래 슬픔에 젖어 지내지 않고 소일거리 삼아 일을 할 수 있도록 점포를 알아보고 계약을 해 두었다. 악필을 부끄러워하는 부인이 남은 평생 사용할 수 있도록 수십 장의 경조사 봉투에 기명도 해 두었다. 또 평소 바이올린 연주를 즐겼지만 부인을 위한 연주를 한적 없다던 환자는 호스피스팀의 권유로, 자택 거실에서,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인을 위해 연주를 했다. 마지막 순간, 부인, 며느리, 아들을 따로 불러 각각 `고생시켜 너무 미안하다`, `고맙다. 나는 너를 믿는다. 어머니 잘 부탁한다`, `나는 싸워서 이기는 것만 이기는 줄 알았는데 그게 지는 거다. 너는 지고 살아라. 지는 게 이기는 거다` 라는 유언을 남겼다.

일 년 뒤 다시 그 가족을 방문했을 때, `세월이 갈수록 더 보고 싶다. 순간순간이 다 기억에 남는다`는 가족들이 고인의 삶과 유언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 가족에게 마지막 시간은 삶을 주고받아 이어가는, `슬프고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 귀한 시간을 함께 한 인연으로 이렇게 고인의 삶을 기억하며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자신의 죽음을 알고 준비할 때, 삶의 마지막 시간은 단지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 그 이상이다. 그래서 죽음을 이야기할 때 "당신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두세 달 밖에 안 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자주 등장한다. 사람들에겐 한결같이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 길고, 의미 있는 계획들도 많다. 그러나 솔직히 이 질문은 그 자체로 삶을 성찰하는 의미가 있을지언정 현실의 죽음 준비에는 적합하지 않다. "나는 임박한 내 죽음을 알 수 있을까?" 혹은 "나는 내 삶의 마지막을 알고 준비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죽음을 알지 못한 채 마지막을 준비할 수는 없으니까.

한 대학병원 종양내과병동에서 이뤄진 연구에 의하면 말기환자에 대한 `심폐소생술 금지`를 결정한 서류의 99%가 가족 서명에 따른 것이었다. 환자의 사망 일주일 이내, 환자가 의식이 없거나 상태가 너무 위중해 의사결정에 참여하기 어려운 시점에서 결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이런 결정을 통해 심폐소생술 같은 연명의료로 인한 육체적 고통은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고 적극적으로 준비하여 죽음을 맞이할 기회는 갖기 어렵다. 결국 자신의 마지막 시간에 대한 의사 표명 없이 말기상태에 놓인다면, 우리는 내 마음의 평화와 희망을 지켜주고 희박한 가능성조차 놓치지 않으려는 가족과 의료진의 선의 때문에 목전에 다가온 내 죽음도 모른 채 고통스런 연명의료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며` 삶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 때 내가 잃는 것은 단지 `편안한 죽음의 기회`가 아니라 `삶의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그러지 않기 위해 삶의 마지막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고 가능하면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물론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에서는 `환자의 의사에 따라 담당의사가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결정 및 호스피스에 관한 사항을 계획하여 문서로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와 `19세 이상인 사람이 평소 자신의 연명의료결정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사를 직접 문서로 작성한` 사전의료의향서를 모두 연명의료결정 방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단지 연명의료 결정에 그치지 않고 말기 상태에 가족과 의료진이 내게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도록 하여 내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으려면 말기환자가 되기 전, 평소의 의사 표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평소에 자기 삶의 마지막에 대해 의논하고 서면으로 의사 표명을 해 둔 사람이 충격을 받을까 봐 말기상태를 감출 가능성은 낮을 테니까.

김형숙 순천향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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