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슈퍼 전파' 위협 절감 간편한 질병 진단 필요성 커져 지속 관심·연구개발 투자 절실

지승욱 한국생명공학硏 질환표적구조연구센터장
지승욱 한국생명공학硏 질환표적구조연구센터장
요즘 극장가에 흥행 중인 `부산행`이란 영화에서 무서울 정도로 순식간에 대한민국이 좀비 바이러스에 함락되는 장면을 보며 과학자 입장에선 미래의 감염병 위기에 대한 대처방안을 상상해보게 한다. 굳이 영화 속에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애볼라, 사스와 같은 신종 인수공통 감염병의 공포를 겪어 왔으며, 오늘도 새로운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 발생 뉴스를 접하는 게 현실이다.

농가에서는 조류독감이나 구제역 감염 여부를 모르기에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무릅쓰고 수백만 마리 가축을 살처분하기도 하고, 치료제가 있음에도 골든타임을 놓쳐 신종플루로 아이를 잃기도 한다. 특히, 우리는 작년 메르스를 통해 `슈퍼 전파`의 위협이 얼마나 무서운 지를 절감했다. 이러한 감염병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으로 병원에 가지 않고도 환자가 있는 현장에서 즉각 병원체 검출을 통한 질병 진단이 가능하도록 하는 `현장진단(Point-Of-Care Test·POCT)`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는 감염병 확산 방지의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감염병의 현장진단을 위해 필요한 대표적인 기술은 병원체의 유전자 정보를 담고 있는 DNA를 검사하여 질병을 진단하는 방법이다. 그 중에서도 유전자 한두 개를 읽어서 진단을 하던 기존의 방법을 탈피하여, 전체 유전체 서열을 읽는 `유전체 (게놈) 분석`이야 말로 가장 정확한 진단법이 될 수 있다. 특히 단 한 번의 유전체 분석을 통해 기존의 다양한 유전자 진단들을 한꺼번에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효율적이다. 최근 유전체 분석 기술의 눈부신 발전에 따라 유전체 해독이 고속화되고 비용은 급감되고 있기 때문에 유전체 분석에 근거한 진단법의 가능성도 점점 현실화되고 있고, 향후 효과적으로 산업적인 진보를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환자별 개인 맞춤형 의료 실현을 위해 빠른 시간에 저비용으로 유전체를 해독하는 `차세대 유전체 분석(Next Generation Sequencing·NGS)` 기술의 급속한 성장으로 분석 단가와 시간이 현저히 감소되고 있으나, 아직은 실험실 안에서만 커다란 고가 장비로 유전체 분석이 가능하다. 병원이나 실험실이 아닌 현장에서 바로 진단에 쓰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유전체 분석 장비의 `초소형화`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그동안 MiSeq, 454 GS Junior 등과 같은 소형 유전체 분석기들이 개발되었고, 특히 Ion Torrent PGM 장비는 전염성이 강한 독소를 가진 대장균(E.coli O104)를 열흘 만에 동정함으로써 독일에서 발생한 식중독 원인균을 찾아내는 데 크게 기여한 바 있다. 이 중에서도 최근 가장 주목할 만한 기술적 혁신을 보이고 있는 차세대 유전체 분석기는 `나노포어 시퀀서(Nanopore Sequencer)`이며 이는 전류 측정을 통해 나노미터 수준의 단백질 통로를 통과하는 DNA의 염기서열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4세대 시퀀서 장비이다. 이 장비의 가장 큰 장점은 하나의 DNA 가닥 전체를 한 번에 읽을 수 있고 초소형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올해 Oxford Nanopore Technologies 에서는 `MinION`이라는 USB 만한 크기의 세계 최초 `포터블 미니 시퀀서`를 출시하였으며, 현재 기존 회사들과 유전체 분석 분야 시장을 점유하기 위한 특허전쟁을 치르고 있다.

원인 모를 신종 또는 돌연변이 바이러스에 의한 미래의 감염병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과학기술의 개발은 영화에서 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이미 전쟁이며, 결국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이다. 이러한 감염병 현장진단에 차세대 유전체 분석 기술의 활용은 최근의 눈부신 기술 발전 덕분에 더 이상 먼 미래의 꿈이 아니다.

이는 예상치 못하게 찾아올 수 있는 감염병의 위협과 공포로부터 인류를 지켜줄 수 있기에 이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개발 투자가 절실하다. 내 손 안의 스마트폰으로 어디에서든 손쉽게 유전자를 분석하여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날이 곧 다가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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