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어찌 이리도 멀답니까 내 고향, 조선 가는 길

사진 = (주)영화인 제공
사진 = (주)영화인 제공
그리움이 가득 찬 영화다. 그래서 극장에는 눈물 흘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영화 속 주인공의 삶은 그리움으로 시작해 그리움으로 끝난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모국(母國)에 대한 진한 향수가 영화 내내 그려진다. 그리움이라는 큰 틀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각각의 사건이 발생할 때 관객들은 분노하고, 좌절하고, 격분하고, 슬퍼한다.

영화 덕혜옹주는 일제강점기 우리 조상들이 느꼈을 감정을 광복 71년이 지난 지금 스크린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준다.

영화 속 이야기는 이렇다. 고종황제가 환갑을 맞던 해, 덕수궁에서 여자 아이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이 아이가 바로 고종이 뒤늦게 양귀인으로부터 얻은 고명 딸, 덕혜옹주다.

고종은 그녀를 위해 덕수궁 준명당에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유치원을 만들었고, 심지어는 덕수궁 내 처소인 함녕전으로 덕혜옹주를 데리고 가기도 했다. 이렇듯 덕혜옹주는 쓸쓸한 말년을 보내던 고종황제에게 한 줄기 삶의 낙이 됐고, 그녀는 잠시나마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1919년 고종황제 승하 후 그녀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뀐다. 조선 황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노력했던 일제는 그녀를 강제로 일본에 유학 보냈고, 1931년에는 일본의 백작인 소 다케유키와의 정략결혼까지 성사시켰다.

덕혜옹주는 당시 전국민의 사랑을 독차지 했던 `국민 여동생`으로, 그녀가 소 다케유키 백작과 결혼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선일보는 결혼식 사진 속 신랑의 얼굴을 삭제하고 지면에 실어 민심을 대변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덕혜옹주는 조현병에 걸려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남편과는 합의이혼을 했으며, 딸 정혜를 잃었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으나 왕조가 부활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이승만 정부에 막혀 입국하지 못했다. 결국 그녀가 다시 대한민국의 땅을 밟은 것은 1962년으로, 이후 낙선재로 거처를 옮겨 살다가 1989년 생을 마감한다.

영화 속 손예진의 연기는 찬사를 보낼 만하다. 영화에서 그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많았다. 작게는 어머니의 딸이기도 했으며 크게는 조선의 옹주이기도 했다. 일본인의 아내, 나라를 잃은 백성, 고향을 그리워하는 실향민 등 다양한 감정이 요구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그녀는 다양한 감정 속에서 자신만의 색깔로 덕혜를 연기했다.

특히 조선이 광복을 맞고, 고국을 찾으려 했지만 입국이 거부된 장면에서의 덕혜의 연기는 압권이었다. 김장한 역을 맡은 박해일의 연기도 박수받기에 충분했다. `은교`, `살인의 추억`, `괴물`, `국화꽃향기` 등 다양한 영화에서 자신만의 색을 보인 박해일은 이번 영화에서도 특유의 카리스마가 깃든 연기를 펼친다.

원작이 100만 부 이상 팔린 `덕혜옹주`인 만큼 스토리도 이미 검증됐다. 덕혜의 삶을 기자인 김장한이 써내려 간 기사처럼 풀어놓은 영화는 어려움 없이 관객들에게 흡수됐고, 진한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다만 길었던 삶을 2시간 안팎의 영화로 줄이는 만큼 결혼 후 그녀의 삶부터는 관객들의 궁금증을 풀어내기에는 아쉬움이 존재했다.

영화가 끝나고 덕혜옹주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글이 스크린에 가득 펼쳐진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라는 덕혜옹주가 남긴 말처럼, 대한민국에 대한 그리움 단 하나로 삶을 이어가야 했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그녀의 이야기는 덕혜옹주를 잊고 있었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깊은 여운을 선사했다. 김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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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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