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구심 산 한·중 토론회 사드 정당성 입 못 열고 적전분열·남남갈등 불러

조선시대 연행(燕行)은 멀고도 혹독한 여정이었다. 문약한 조선왕조는 중국에 빈번하게 외교사절단을 파견했다. 동지 땐 동지사를, 신년 하례 인사차 정조사를 보냈다. 황제 생일 축하사절인 성절사에 이르기까지 수백 차례 이상 6000리 길을 오갔을 것이다. 오늘날 연행은 원·명·청의 수도였던 북경의 옛 이름인 연경에 가는 길을 줄인 말로 굳어졌다. 한편으론 외교의 일환으로 중국에 건너간 사신 일행을 통칭한다.

신하들은 사절단에 드는 걸 내켜하지 않았다. 조공이나 책봉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목숨 걸고 다녀 온들 국왕 눈높이에 맞는 성과를 내기란 쉽지 않았다. 연행으로 인해 역사가 뒤 바뀔뻔 한 일도 있었다. 영화 `관상`에서 묘사했듯 수양대군은 1452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뒤 사경을 헤맨다. 명의 환심을 사기 위한 행보로서 정적인 김종서 장군의 아들을 볼모 삼아 강행군했건만 고단한 왕복 길을 견뎌내지 못했다. 이처럼 정치적 함의까지 담긴 게 연행이다.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 6명의 `셀프 연행`을 놓고 논란과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8일 학술회의 참석이라는 명분으로 방중한 뒤 어제 귀국했다. 중국이 우리의 사드 배치를 놓고 외교 책임자가 직접 나서거나 관영 매체를 총동원해 겁박하는 상황에서 빚어진 일이다. 방중 기간 중 사드 배치에 대한 찬반 입장을 밝히지 않고 의견만 청취하겠다고 공언했건만 의도대로 됐다한들 얻은 게 무언지 의문이다. 되레 중국의 관제학자에게 일장훈시를 듣고 이용을 당한 게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중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밥 먹는 문제로 주중 한국대사관과 벌인 진실공방이라고 뭐가 다를까. 결국 사드 해법을 모색하기는 커녕 당초 우려보다 더 큰 적전분열과 남남갈등을 야기하고 말았다.

주지하다시피 사드는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비한 방어적 조치에 불과하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자위권을 확보하자는 게 본질이자 핵심이다. 선량(選良)이 제 발로 호랑이 굴에 들어갔다면 사드 배치의 당위성을 떳떳하고 명확하게 밝히는 게 바른 이치다. 베이징대 토론회를 마친 뒤 `한·중 양측은 현재의 한·중 문제에 대해 깊이 있고,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라는 식의 3문장 짜리 발표문을 내놓고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러니 `대한민국의 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있다`는 국제사회의 비아냥을 사는 게 아닌가.

더욱 우려스런 건 `셀프 연행`이 초선 6인방의 돌발 행동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방중 반대 입장을 피력한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전략적 모호성` 속에 이들의 연행을 잡지 못했다. 나아가 더민주 당권경쟁에 나선 후보 3명은 하나같이 사드 반대를 외치고 있다. 의원 6명은 오늘 의원총회에서 방중 관련 내용을 공식 보고할 예정이어서 불똥이 어디로 튈 지 예단하기 어렵다. 대화와 타협 대신 당내 노선 투쟁과 여야 확전의 기폭제로 작용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사드 배치 지역인 경북 성주의 안보 및 보훈 단체들이 제 3지역 배치 검토를 주장하고 나서 실타래가 풀릴 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기존 배치 예정지에 대해선 `절대 불가` 입장을 분명히 하되 사드가 꼭 필요하다면 적합한 절차를 거쳐 제 3지역을 선정해야 한다는 요구다. 합리와 이성이 느껴진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이 제 3지역 검토 입장을 시사했다는 점에서 솔로몬의 지혜를 도출할 지 지켜볼 일이다. `안보 이상의 국익은 있을 수 없다`는 데 인식을 함께 한다면 사드를 둘러싼 공방은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고 믿는다.

조선조 연행길은 고행이었지만 세계 정세를 파악하는 절호의 기회였다. 세종은 전략적 차원에서 외교사행을 강화했다. 중국의 등쌀 속에서 활로를 찾기 위해서였다. 개인 자격으로 연행에 나선 연암 박지원 같은 이도 있었다. 그는 1780년 청 건륭제 고희연 축하 사절단에 끼여 연경을 돌아본 뒤 `열하일기`를 남겼다. 연행은 시대를 앞서간 지식인의 고뇌를 함께 하며 역사 속에서 지향점을 찾는 길이었다. 방중 의원단은 연행의 의미를 알고나 베이징을 다녀온 걸까.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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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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