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볼수록 미운정 고운정, 영웅 뺨치는 악당들

그동안 우리 시대, 정확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슈퍼히어로는 슈퍼맨과 배트맨, 원더우먼이었다. 이들은 과거 TV 애니메이션이나 예능 프로그램의 패러디 요소로도 종종 등장하며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당시 해당 캐릭터들이 나온 영화·게임과 같은 미디어믹스 콘텐츠는 그 자체로도 명작이긴 했지만, `익숙함`이라는 무기가 흥행 요소로 작용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익숙함이라는 놈은 쉽게 정(情)을 갖도록 만든다. 슈퍼히어로에 익숙해지다 보니 작품의 세계관과 적 캐릭터인 `빌런`들에게도 애정이 생긴다. 시련을 거듭할수록 슈퍼히어로는 성장하고 이야기의 극적 요소는 풍성해진다. 독자, 혹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으며 히어로·빌런 가릴 것 없이 캐릭터에 깊이가 더해진다. 슈퍼맨의 대척점에 서 있는 렉스 루터, 배트맨의 숙적 조커와 같은 캐릭터가 주인공만큼이나 매력적이고 완성도 높은 인물로 그려지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이처럼 `섹시한` 악당들이 한데 모이는 작품이다. 출연하는 악당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배트맨과 그린애로우 시리즈에 단골 출연한 백발백중의 암살자 데드샷(윌 스미스), 세계 제일의 사이코패스에게 빠져 자신마저 광기에 사로잡힌 전직 정신과 의사 할리퀸(마고 로비), 태어날 때부터 온몸이 비늘로 덮여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킬러크록(아데웰 아킨누오예 아바제) 등이다. 팀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배트맨 평생의 숙적이자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악당인 조커(자레드 레토)도 조연으로 등장해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영화는 슈퍼맨과 같은 히어로들에게는 불가능한 특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결성된 `자살 특공대`의 이야기를 담았다. 수감중이던 이들은 아만다 월러(비올라 데이비스) 국장이 극비리에 추진하던 프로젝트를 통해 한 팀이 된다. 그리고 통제 불가능한 적을 섬멸하기 위해 현장에 투입되고야 만다. 사실 코믹스 기반 영화는 결국 캐릭터 싸움이다. 우리가 히어로 무비에 열광하는 이유도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강력한 능력, 혹은 다양한 모습과 액션 시퀀스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개성조차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이는 DC가 `나오지 말았어야 할 시기`에 이 작품을 내놓은 탓이다.

보통 히어로 무비는 1편에서 캐릭터의 탄생과정과 성장에 대한 서사를 마친다. 이후 트릴로지까지 이어진다면 2편과 3편에서 극적인 요소를 다수 배치해 이야기를 심화시키는 방식을 취한다. 마블의 어벤저스처럼 캐릭터 1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 뒤 한데 몰아놓았던 것이 좋은 예다.

하지만 영화는 캐릭터를 한 곳에 몰아놓고 소개를 하는 데에만 30분을 훌쩍 넘긴다.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았던 만큼, 그리고 팬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낯선 빌런들인 만큼 소개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어벤저스와 같은 방식으로 캐릭터 소개를 했다면 더욱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끌어갔을 것이다. 이미 전작인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무리하게 다른 히어로를 소개하다 이야기가 산으로 갔음에도 DC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야 말았다.

캐릭터 소개에서 너무 힘을 빼다 보니 서사적인 측면은 더욱 취약하다. 말인즉슨 이야기가 없다. 손 안에 있었지만 통제 불가능한 적을 상대한다는 큰 맥은 잘 잡고 있으나, `악당`이라는 특별한 캐릭터가 유발할 수 있는 극적 갈등이나 반전은 좀체 찾아볼 수 없다. 평면적인 이야기 탓에 지루해져 시계를 보는 시간만 늘어나게 된다.

그나마 희망을 걸어봄직한 비주얼은 일반 전쟁영화와 큰 차이가 없다. 상기했듯 히어로물은 일반 사람, 혹은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액션과 행동에서 강력한 쾌감을 얻는 것도 주된 목적이다. 이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높아질 대로 높아진 관객들의 눈을 영화가 채워줄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비주얼적인 측면만 보강됐어도 영화의 재미는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결국은 조급함 때문에 그르친 작품이다. 이 좋은 캐릭터들과 그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각종 이야기들은 `마블을 쫓아야 한다`는 DC의 강박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할리퀸이라는 캐릭터에 완벽하게 빙의한 마고 로비, 그리고 광기에 사로잡힌 조커 역의 자레드 레토의 빼어난 연기였다. 이밖에 데드샷을 비롯한 다른 빌런들이 출연할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이야말로 DC가 건진 수확이었다고 할 것이다.

판도는 이미 바뀌었다. 그동안 우리시대 최고의 히어로라는 타이틀은 이미 라이벌이 가져갔다. 철옹성 같던 슈퍼맨·배트맨의 자리는 이제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 그리고 어벤저스를 필두로 한 마블코믹스가 대체했다. 그렇지만 불과 10여 년이다. 평범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봐야 한다. DC는 언제까지 실수를 반복할 것인가. 전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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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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