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실패를 모르는 조직·사람 도덕적 해이로 몰락의 길 자초 권력·지위 높을수록 겸손 필요

"누구든지 서 있는 자, 넘어질까 조심하라."

은행업, 모피업, 그리고 모피산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백반(白礬:명반(明礬))산업을 한 손에 쥔 피렌체 르네상스의 주인공 메디치가(家)가 몰락한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중세 이래 약 350년간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메디치가는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 때에 이르러 이른바 `돌보지 않는 캐시 카우(cash cow) 법칙`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로렌초는 겨우 17세에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엄청난 재산과 교황청의 도움으로 중세 경제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백반산업에까지 진출함으로써 매일같이 쏟아져 들어오는 돈의 홍수에 현실감각이 무뎌졌다. 대체로 결핍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성장한 세대는 일반적인 물리적 비례법칙이 거부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 속담에 부자는 3대를 못 간다고 하지 않았는가? `누구든지 서 있는 자,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캐시 카우 법칙을 무시한 결과다.

캐시 카우를 손에 쥔 로렌초는 복잡한 메디치 은행의 재무제표를 읽는 것을 싫어했다. 참모들이 은행 일과 관련해 사업상 필요한 중요한 결정을 의뢰하면 "저는 그런 일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라고 말하고 일의 전부를 전문 경영인인 프란체스코 사세티(Francesco Sassetti)에게 맡기고 본인은 인문학자들이나 예술가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유능했던 사세티는 시간이 지나면서 면밀하고 세세한 검토를 해야 하는 복잡한 은행 일에 대해 점점 소홀해졌다. 그는 주인인 로렌초의 환심을 사는 데만 골몰했고 더 이상 메디치 은행 일을 돌보지 않았다.

결국 그는 벨기에 브뤼헤에 있는 메디치 은행 지점장인 토마소 포르티나리(Tommaso Portinari)가 악성부채를 양산하게 한 부정 대출과 개인 이권에 개입하는 것을 관리감독하지 못했다. 로렌초는 일찍이 포르티나리의 능력에 대해 의심을 했지만 그의 아버지와 자신의 아버지 피에로 데 메디치(Piero di Lorenzo de` Medici)가 어린 시절 친구였던 관계를 고려해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았다. 포르티나리의 도덕적 해이를 시작으로 유럽 최대의 은행인 메디치 은행은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처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당연히 포르티나리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를 관리 감독해야 하는 사세티 역시 죄를 면할 수가 없다. 더더욱 매일같이 쏟아내는 돈의 홍수에 빠져 더 이상 캐시 카우를 돌보지 않은 로렌초 역시 그 책임으로부터 면제되기란 어렵다.

우리 사회의 검사, 국회의원, 정치가 등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 승승장구하는 기업과 기업의 총수들, 말 그대로 잘 나가던 운동선수들과 인기스타들, 그리고 실패를 모르는 여러 조직들과 사람들, 이들 모두는 어쩌면 캐시 카우를 한두 마리 정도는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어떤 사람은 캐시가 아니라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그 대신 그들은 명예와 영광을 캐시 이상으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은 소유하고 있는 카우를 잘 관리하고 보살피지 않으면 과거 로렌초가 그랬던 것처럼 아니 우리 사회는 물론 인류 역사 속에서 나타난 수많은 사례에서 보듯이 서 있는 자들이 조심하지 않으면 넘어지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누구든지 말이다.

물론 오늘날의 카우를 잘 돌본다는 의미는 과거 로렌초의 경우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검사는 검사로서 정의를 구현하고 진실을 밝히는 역할에,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하는 민의를 담아내는 역할에, 정치가는 정치가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잘 나가는 기업의 총수, 운동선수, 인기스타, 그리고 실패를 모르는 조직이 오만에 빠지지 않고 한결같은 겸손 속에서 자신을 가꾸어 가야만 하는 것이다. 검사가 국회의원이 정치가가 그들의 권력과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캐시 카우를 너무나 비대하게 살찌우게 되면 그 카우는 더 이상의 캐시를 더 이상의 영광과 명예를 내놓지 못하게 된다.

김형곤 건양대 기초교양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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