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전통·관습적 부정청탁금지 사회 변화·개혁은 진통 따르기 마련 국가전체 이익·정의 먼저 따져봐야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한국서점에서도 불티나게 팔려나갔을 때 이것이 뉴스가 됐었다. 아니,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달라졌나, 이렇게 정의에 목말라 했나, 이것은 우리 미래에 대한 긍정적 신호요 희망이다… 이런 반응들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번에 김영란법에 대한 거부 반응들을 보면서 `우리는 아직 멀었다`라는 실망감이 다가왔다. 우리는 전통과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미풍양속이라는 미사여구로 양심의 가책도 없이 허위의식과 부조리를 방치해왔고 이제 정의와 공정, 평등의 가치를 거의 질식지경이 이르게 했다. 공기로 따진다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가 `매우 나쁨` 상태인거나 마찬가지다. 이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와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3만원 짜리 식사가 어때서? 더 많이 내고 싶은 데 너무 싸서 걱정이라고? 이런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값이 너무 싸서 불편하다는 것 같은데 무슨 이유로 그렇게 불편한가? 예부터 `공짜점심은 없다`는 게 인간사회의 정설이다. 굳이 비싼 밥을 사겠다, 비싼 선물을 보내겠다, 경조비를 많이 내겠다는 사람들의 진짜 의도는 무엇인가? 더 돕고 싶은데 돈이 작아서 미안하다는 뜻인가, 아니면 그 정도 액수로는 일이 잘 안될 것 같다는 뜻인가? 그 `일`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 법의 대상은 공직자다. 공직자도 자기 돈 내고 먹으면 한번에 30만원, 300만원 짜리 식사를 해도 아무 상관없다. 공짜로 얻어먹는 것이 문제다. 공짜로 얻어먹고 공짜로 골프치고 공짜로 술먹고 2차가고 그러다가 한통속이 되고 안될 것도 해주고…이것이 오늘날 한국을 망치고 있는 부패구조다. 모든 분야, 각계 각층이 이런 구조에서 안전한 곳은 없다. 뇌물용이 아니라면 밥값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비 10만원도 보통사람들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몇 배나 되는 미국, 영국, 북유럽 같은 데서도 이런 식의 지출은 없다.

공직자는 국민과 국가에 대한 봉사자로서 일정한 권한을 행사한다. 그래서 국가 세금으로 월급을 주고 연금도 준다. 일반 민간인과 달리 청렴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자리다. 그들이 가진 권한은 오직 공익을 위해서만 써야 한다.

그런데 이 권한을 공익이 아니라 사익을 위해서 쓰도록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경제적 이익이나 편의를 위해서 공직자들이 부정한 짓을 하도록 집요하게 유혹한다. 공직자들이 얻어먹는 것은 부패의 수렁으로 빨려들어가는 지름길이다. 얻어먹고 안 해주면 의리 없는 놈으로 낙인찍히고 심하면 폭로 협박에 시달린다. 지연, 학연, 직장, 혼맥, 정실 등이 얽히고 설켜 한 두칸만 건너면 다 통한다는 이 땅에서는 부적절한 유착과 부패의 폐해가 너무 심해서 이제 혁명적 수단이 아니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 그래서 김영란법이 과연 이런 혁명적 실효를 거둘수 있을지 의문이다. 담배나 마약을 끊는 것처럼 어렵고 금단증상이 나타날 것이고 벌써부터 아우성이다. 사명감 없는 국회의원들은 부정청탁 항목에서 날쌔게 빠져나가더니 이 법이 비현실적이라고 떠들고 있다.

우리는 지금 분수이상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것이 과연 정당한 수입과 지출로 이뤄지고 있는가?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잘 먹어서 살빼기를 걱정해야 하는 세태는 곤란하다. 욕심을 줄이고 좀더 소박한 삶, 진정한 삶, 인간적인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 국민들이 더 이상 타락하지 않고 도덕적인 삶을 살겠다는 심경의 변화가 없다면, 그리고 이 법을 제대로 시행해야 할 관청이 남의 일처럼 팔짱이나 낀다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때 청첩장금지, 화환금지, 음식물접대 금지 등이 포함된 가정의례개혁도 단행됐지만 정서적 거부감과 이기주의에 밀려 흐지부지된 전례가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변화와 개혁에는 진통이 따른다. 그러나 무엇이 국가전체의 이득인지, 무엇이 정의인지를 기준으로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순천향대 대우교수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보도 및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