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폭염에 힘겨운 나날들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겨냈으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저수지가 있다. 물이 맑고 풍광이 좋아 이따금씩 그곳을 찾곤 한다. 혼자만의 호젓함이 간절할 때면 잠깐씩 주변을 거닌다. 계절을 무한 반복하는 자연은 참으로 정직하다.

지난주, 저수지의 물은 온통 흙빛이었다. 장맛비가 내려 저수지는 만수위. 제방 위에 서서 한동안 불투명해진 물속을 바라보았다. 우리네 삶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비가 그치고 폭염주의보가 내린 무더위의 여름 한낮은 숨을 쉬기도 힘에 겹다. 선선한 바람이 온 몸에 생기를 주던 지난 가을을 상상하면서 견디기 어려운 이 여름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생각해보면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다. 계절의 불편으로부터 벗어나고만 싶은. 문명이라는 건 이렇듯 욕망에서 태어난 자식들인지도 모른다. 에어컨과 냉장고가 그렇고 히터와 보일러가 그렇지 않은가.

지난 가을, 인도네시아에 간 적이 있다. 적도가 머리맡을 지나가는 나라. 한 해가 건기와 우기의 두 계절로 이루어져 있지만 계절은 일 년 내내 우리나라의 한여름이다. 비행기를 타고 일곱 시간을 날았다. 공항을 나서 보니 다른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반팔에 반바지를 입은 그들은 여치처럼 가볍게 뛰어다닌다. 산다는 건 어떤 것인가. 적응하며 사는 것인가 견디며 사는 것인가.

마른 장마와 폭염에 모두가 힘에 겹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나 정치와 경제 모두 할 말이 없다. 그저 견뎌야만 하나, 적응해야만 하나.

덕으로 천하를 다스리던 堯舜(요순) 시대에도 좋은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20년 동안이나 홍수가 지속되었다. 요임금은 `곤`을 시켜 홍수를 다스리게 했는데 곤은 9년간 치수했지만 물길을 다스리는데 실패하였다. 그의 아들 우는 아버지의 실패를 분석하여 물길을 막지 않고 물길을 틔어 작은 시내는 큰 강으로, 큰 강물은 바다로 흘러들게 함으로써 13년의 노력 끝에 홍수를 잡는데 성공하였다.

武王(무왕)이 주나라를 세우기 이전 선조인 `직`은 농사에 재능을 발휘하여 오곡의 신으로 추앙받는다. 역시 순임금에 의해 농림수산부 장관 격인 后稷(후직)에 임명돼 백성들에게 농사법을 가르쳤다.

孟子(맹자)는 離婁章句(이루장구) 하편에서 두 사람을 등장시켜 말한다. `우임금은 자기가 사명을 완수하지 못해 백성들이 물에 빠진다 생각했고, 직은 자기가 일을 잘못하여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다고 생각했다(禹思天下有溺者 由己溺之也 稷思天下有飢者 由己飢之也).

`기기기익`(己飢己溺). -자신이 굶주리고 자신이 물에 빠진 듯 여기다.

더위를 피해 자연을 찾는 피서객들의 발걸음이 잦아지는 때다. 산과 바다는 수많은 인파들로 넘쳐난다. 고속도로는 끝없이 밀려드는 자동차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삶의 현장에서 묵묵히 생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있다. 가을걷이를 위해 무더위에도 구슬땀을 흘리는 농부들이 그러하고 우리들의 안락한 휴식을 위해 봉사하는 많은 이들이 그러하다. 또한 휴가란 말도 엄두에 내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서로를 향한 배려가, 기기기익 하는 마음이 이 폭염을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 것인가.

적응과 견딤 사이. 시원한 한줄기 소나기처럼 우리들의 삶에 반가운 소식들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정치든 경제든 말이다.

정직한 자연에서 찾아낸 생활의 지혜. 뙤약볕이 없다면 가을에 거둘 것 또한 없다. 그것이 묵묵히 이 시대를 견뎌내는 우리 서민들의 생존 전략이다.

이태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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