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재난영화는 사실 압도적인 스케일이 흥행의 열쇠다. 그게 무엇이든 강력한 힘으로 모든 것을 휩쓴다는, 재난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 때문일테다. 그래서인지 흥행한 재난영화들은 스케일도 남달랐다.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킨 명작 타이타닉, 우주급 스케일을 자랑하는 아마게돈, 1132만 명을 스크린 앞으로 끌어들인 해운대 등 종류도 가지가지다.

그러나 꼭 스케일이 크다고 해서 이야기가 충실할 거란 보장은 없다. 다룰 이야기와 주제가 많은 만큼 배는 산으로 간다. 수백억을 들이 부어 만든 어설픈 블럭버스터가 각종 구멍으로 관객들의 등을 돌리게 한 것이 그 예다.

제약된 장소와 소재는 그래서 특별하다. 배우들이 연기하는 캐릭터, 그리고 이야기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준다. 덕분에 영화 `부산행`은 기차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끊임없는 긴장감을 밀도 있게 그릴 수 있었다.

영화는 좀비 바이러스에 뒤덮인 재난상황을 가정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전국에 확산된다. 급기야 긴급재난경보령이 선포되기도 한다. 부산행 열차에 탑승한 사람들은 유일한 안전지대인 부산까지 살아서 가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인다.

미친듯이 빠른 좀비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아비규환의 상황 속에 석우(공유)와 수안(김수안) 부녀, 성경(정유미)과 상화(마동석) 부부, 미묘한 친구사이인 영국(최우식)과 진희(안소희)도 있다. 살아남기 위해 극한의 싸움을 벌여야만 하는 이들은 재난상황에서 다양한 일들을 겪게 된다.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익히 알려진 연상호 감독은 사람들의 심리 묘사에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전작인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 등에서 그가 그려낸 것은 사람 뿐만이 아닌 사회의 이면이었다. 그의 독창적이고도 참신한 스타일은 부산행에도 그대로 담겨있다. 놀라운 심리묘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은 극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가장 중요한 장치는 역시 속도였다. 가장 빠른 이동수단인 부산행 KTX열차가 주요 배경이라는 점, 그리고 바이러스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확산된다는 점은 긴장감을 끌어올리는데 아주 좋은 요소였다. 사람들은 전대미문의 상황,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공간과 상황 안에서 극한의 이기심과 갈등을 겪게된다. 혼란을 마주한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탁월하게 그려냈다.

배우들의 호연은 영화의 백미다. 현재 충무로에서 가장 `핫`한 배우인 공유와 정유미, 마동석, 최우식과 안소희 등 출중한 연기력으로 무장한 배우들은 캐릭터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공유가 연기한 석우는 재난을 겪으면서 딸인 수안의 소중함을 차츰 깨달아가는 인물이다. 또 자신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사람들을 돕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정유미, 그리고 그를 지키려는 남편 마동석의 혼이 담긴 연기는 영화 내내 따뜻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안소희와 최우식 역시 혼란을 겪는 고등학생들의 모습을 가감없이 그려내며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적어도 연기에서는 전혀 나무랄 데가 없는 조합이다.

다만 아쉬운 점도 분명 있다. 각종 설정과 장치들이 영화 중후반부에 접어들 수록 퇴색된다는 점이다. 설정에 다소 민감한 관객이라면 일부 장면, 그리고 일부 캐릭터의 행동이 초기 설정과 배치된다는 이유로 실소를 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부산행은 뛰어난 영상미와 극한의 긴장감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영화다. 그 극한의 긴장감이 영화의 재미를 크게 높여준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공식적으로 초청받은 작품은 아니지만, 칸에서 가장 뜨거운 박수를 받은 영화. 스크린에서 직접 확인할 때다. 전희진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전희진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