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노선 정보차단·사후 공청회… 밀어붙이기" 잇따른 개발관련 논란에 공동체 붕괴 우려 고조

북면 용암리 등 마을 곳곳에 마을을 관통하는 민자 노선 건설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강은선 기자
북면 용암리 등 마을 곳곳에 마을을 관통하는 민자 노선 건설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강은선 기자
"국가에서 길 내는데, 왜 굳이 집을 관통해 건설하겠다는 건지…."

지난 20일 천안 북면 매송리에서 만난 마을 주민 윤주홍(65)씨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분통을 터뜨렸다.

윤 씨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과 마을을 관통해서 차 다니는 길을 낸다는 게 말이 되냐"며 "이건 인생을 짓밟는 것과 다름없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윤 씨는 다른 지역에서 살다 북면에 정착한 지 이제 2년 됐다. 청정지역에서 안락한 노후 생활을 꿈꿨던 윤 씨의 바람은 서울-세종 고속도로 건설로 무참히 깨졌다. 천안을 지나는 구간이 북면 마을을 둘로 쪼개듯 관통하기 때문이다. 특히 북면을 지나는 노선 대부분의 구간은 전원주택단지다.

인근에서 만난 다른 주민들도 윤 씨와 같은 심정을 나타냈다.

김영세(71)씨는 "개발이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며 기자에 되물었다. 김 씨는 "지역에 개발사업이 추진되면 당연히 주민을 위한 개발이 돼야하는 것 아니냐"며 "개발이 목적이 무엇인지, 주민을 소외시키고 그대로 밀어붙이기만 하면 되는 건지, 이 고속도로 노선은 주민을 갈라놓기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세종 고속도로가 북면을 관통하는 노선이 건설된다는 소식이 알려진 지난 5월 이후 주민들은 강경 대응에 나섰다. 주관 부처인 국토교통부에 항의도 하고 마을 곳곳에 노선을 반대하는 플래카드도 붙였다. 천안시장과의 면담도 요청했다. 지난 달에 열린 주민공청회는 항의하는 뜻에서 무산시키기도 했다.

민자 고속도로로 건설되는 노선안을 보면 500m안에는 주택과 학교 등이 102개가 있고 50m안에는 41개가 분포돼있다. 사실상 마을 주택단지 위에 그대로 고속도로가 뚫리는 것이다. 정부가 2009년에 내놓았던 노선안도 50m안에 주택 등이 37개가 소재해있어 민자안과 별반 차이는 없다.

주민들이 가장 불만을 내는 것은 정보의 차단이다. 면사무소 등에서는 이미 고속도로 노선이 마을을 관통해 건설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를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첫 주민설명회가 지난 4월에 열렸을 때도 대상자인 주민들에게는 일말의 알림도, 공지도 없었다.

정보 차단은 행정기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그러다보니 마을 뒷산에 박힌 말뚝 등 작은 변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고속도로 노선 건설을 반대하고 주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주민들은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주민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신태진(60)씨는 "정보를 알아야 대응을 할텐데 천안시도, 국토부도 이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면서 "노선도 주민들이 직접 위성지도에 넣어 확인하니 마을을 관통하는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절차적 문제도 짚었다.

노선이 지근 거리에 지나는 은지생태마을 주민인 이인도(51)씨는 "사업 대상자인 주민 의견 수렴을 먼저 하고 개발하는 게 아니라 이미 정해놓고 사후처리 하듯 공청회를 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비판했다.

주민들이 더 우려를 내보이는 것은 `지역 공동체 붕괴`다. 산업도시로 급속 성장한 천안시에서 북면은 개발의 마지막 보루같은 지역이다. 금북정맥 줄기에서 뻗어나온 거대 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고 맑은 하천이 흘러 `천안의 알프스`라 불리는 지역이지만 이 때문에 개발자들이 눈독을 들이는 곳이기도 하다.

북면의 최근 10년은 개발과의 사투 역사였다. 2007년 골프장 건설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고 2011년에는 골프장 증설 논란으로 이어졌다. 마을 주민은 제각각 입장에 따라 갈라졌다. 주민들은 분열을 우려했고 가까스로 봉합됐다. 그러다 올해 4월 다목적댐과 고속도로 노선 건설로 또다시 공동체 붕괴 조짐이 보이고 있다.

대책위도 북면 주민들로 구성된 주민대책위와 여러 관변단체 등으로 구성된 지역대책위로 이미 나뉘어졌다.

이날 점심 때가 되자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있는 단비교회로 모였다. 동네 주민들이 직접 마을의 소소한 이야기를 취재해 만든 마을신문 창간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한 주민이 말했다. "이게 북면 주민의 삶입니다.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고 공기 맑은 청정지역, 그야말로 천안의 알프스인 이곳에서 내 집, 내 땅에서 남은 인생을 편하게 살고 싶은 게 욕심입니까? 정부에 묻고 싶어요. 꼭 그렇게 해야하겠나고요." 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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