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고 없는 통영서 옛사랑 찾은 백석 시인

송희영 서울예대 교수
송희영 서울예대 교수
지방의 한 도시가 갑작스런 유명세를 떨쳐 관심을 끌고 있다. 증강현실 모바일 게임 `포켓몬 고`(PoKemon Go) 열풍으로 예상치 않은 관광특수를 맞게 된 강원도 속초시의 이야기이다. 게임에 별 취미가 없는 필자조차도 포켓몬 고 사냥꾼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는 낙산사 마당의 진풍경을 구경하러 가고 싶은 욕구가 솟을 만큼 속초시는 관광도시로서의 새로운 매력을 분출하고 있다. 전국 게이머들의 순례지로 깜짝 변신한 속초시는 결과적으로 장소판매(Place selling)를 근간으로 한 도시마케팅의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 포켓몬 고 게임의 유행으로 파생된 독점적인 관광특수가 유한하다는 점, 그리고 이것이 근본적으로 속초시 자체의 노력으로 구축된 관광자원이 아니라는 점에서 현재와 같은 속초시가 누리는 호황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바라 볼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장소판매 전략은 장소(도시)의 매력을 부각시켜 상품화하려는 시도로서 19세기 중반 미국 북동부에서 처음 선보인 이후 새로운 도시산업 정책의 일환으로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이랬던 초기단계에서 벗어나 21세기 들어서는 도시의 이미지를 창출하여 관광 및 문화산업으로 융합하는 도시마케팅으로 진일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도시 속에 잠재된 유·무형의 문화유산과 문화자원을 통해 발현되는 지역의 고유한 문화정체성이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고 있다. 도시의 기존 이미지를 개선하거나 새 이미지를 만들어 도시를 홍보하는데 유용한 문학·미술·영화·건축물·예술축제, 또는 그와 연관된 인물을 콘텐츠화하여 도시발전의 계기로 삼는 문화도시론이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나 도시마다 관광객 유치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추진하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남발되는 유사 콘텐츠로 인한 사업의 비효율성과 예산낭비 등 문제점도 만만찮게 발생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도시문화자원을 발굴하여 도시에 스토리를 입히는 스토리텔링형 문화도시를 대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 소재의 원천지로 알려진 이탈리아 북부도시 베로나에서 줄리엣의 집과 무덤을 재현하여 연간 수십만의 관광객 유치에 성공하고 있는 사례가 가장 대표적으로 회자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도시문화자원은 어떤 것이 있으며, 어떤 방안들이 있을까?

최근 연극축제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한 학생들을 인솔하고 경남 통영에 약 일주일간 머물렀다. 이때 연극축제 부대사업의 하나로 대학생 대상 `통영 문화콘텐츠의 보물찾기`라는 공모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을 맡았는데, 해안가 풍광이 아름다운 휴양도시로만 알고 있던 통영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는 뜻밖의 배움을 얻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에 응모한 한 팀은 "당신의 첫사랑이 시작된 도시는 어디입니까?"라는 질문과 함께 시인 백석의 발자취를 따라 떠나는 통영의 여행 지도를 만드는 아이디어를 제출하여 주목을 끌었다. 사연은 이러하다. 통영에서 근·현대 한국 예술계에 족적을 남긴 소설가 박경리, 시인 유치환·김춘수, 연극인 유치진, 현대음악가 윤이상 등 수많은 예술가들의 고향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통영과 연고가 없던 시인 백석(白石)이 `난(蘭)`이라는 이름의 통영출신의 여인(실명은 박경련)을 찾아 통영에 서너 차례 왔었고 그때 연모하는 마음을 담아 통영·고성·삼천포·창원 등 남해안의 풍광을 그린 연작시 수편을 남기게 된다. 통영을 찾는 여행객들은 시인 백석이 찾았던 통영의 강구안 골목길에서 어렵지 않게 백석이 남긴 시들을 마주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통영의 낡은 항구`를 찾았던 옛 시인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백석 시인의 길(가칭)` 여행코스를 개발하게 된다면 얼마나 매력적인 도시가 될 것인가?

미숙한 점이 한둘 있었지만 잠재력을 감안해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만장일치로 우수작으로 뽑았다. 문화도시를 추진하는 과정에 지역특성이 구현된 독창적이면서도 지속발전 가능한 도시문화콘텐츠를 발전시키려는 연구와 노력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전문가나 관련 정책을 맡고 있는 공무원뿐 아니라 주민, 그리고 필요하다면 외부자원의 참여도 독려할 필요가 있다. 우리 도시의 문화보물 찾기는 우리 자신뿐 아니라 때로는 `나그네의 눈`에 더 잘 뜨이기 때문이다. 송희영 서울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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