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전 필요성 대체로 공감속 이견 산재

20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그동안 잠잠하던 개헌 논의가 봇물처럼 커져가고 있다. 여소야대의 총선 민의를 바탕으로 권력구조 개편논의가 주를 이루고 있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개헌의 필요성은 대체로 공감하지만 개헌의 방향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개헌 절차의 엄격성으로 봐서 실제로 개헌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논의에 그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이번 기회부터라도 국민이 주인이 되는 개헌의 방향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있었으면 한다.

첫째, 자유, 평등, 복지 등 헌법 가치에 대한 공개적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헌법제정자들은 1780년대임에도 불구하고 필라델피아에 모여서 넉 달 동안 밤낮으로 헌법제정회의를 가지면서 세계 최초의 공화주의 정부형태를 탄생시켰다. 이 과정에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로 추앙받는 알렉산더 해밀턴, 존 제이, 제임스 매디슨은 왜 연방헌법이 필요한지, 인류 초유의 정치제도인 대통령제를 비롯해 연방정부의 권력구조나 정치제도는 어떻게 구성되고 기능해야 하는지를 시민들에게 설명하고자 `페더럴리스트 페이퍼`를 집필했다. 그야말로 치열한 논쟁과 타협의 산물로 미국의 헌법이 탄생했다. 이제 우리를 보자. 21세기 IT 사회는 국민이 개헌 과정에 참여하고 그 과정을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을 매우 용이하게 해 줄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서 혹은 모바일을 통해서 전 과정을 공개하고 국민이 의견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전까지의 개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자유, 평등, 복지의 가치에 대한 논쟁과 타협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둘째, 국민투표를 허용할 것인지 여부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미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이상 찬성을 받은 헌법개정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될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동안의 국민투표를 보아도 그렇다. 국민투표는 성격상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결정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거나 국민의 의사가 팽팽하게 나뉘어 대의기관이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경우에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선택하는 것이다.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처럼 일반적으로 단일한 사안에 대해 국민의 의견을 직접 묻는 것이다. 따라서 복잡한 가치체계의 결정체인 헌법의 개정을 찬반의 형태로 정하는 국민투표는 다분히 형식적이며 허수아비 국민투표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민주권의 가치적 차원에서 만약 국민투표를 인정하더라도 국회에서의 논의 과정 속에 국민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비헌법적인 내용들의 정비가 이번 기회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법률로 규정해도 충분하거나 헌법적 가치와 그다지 관련이 없는 내용들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국가원로자문회의·국민경제자문회의 등은 헌법적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다. 아울러 선출직 공직자인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제외하고 기타 임명직 공직자의 구성과 임기에 대한 규정은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법률로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권력구조의 개편은 개헌의 전부가 아니며 개헌의 핵심이 되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격언처럼 권력의 속성은 지배와 통제이다. 국민은 투표일에만 주권자일뿐 그 다음날부터는 피지배자라는 비판은 권력구조를 설계함에 있어서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국민의 자유, 평등, 복지를 증진하기 위해 권력구조는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 충실하게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로 비판받는 단임제 대통령제의 폐해는 경험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지만 대통령 중임제, 이원 정부제, 내각책임제 등으로의 권력구조의 개편은 여러 가지 방법 중의 하나이어야 한다. 충분조건들에 대한 논의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대통령 선거에 임박해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권력구조에 대해서만 이른바 원포인트 개헌을 하거나 그나마 개헌이 무산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개헌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개헌의 과정이 아름다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성선제 고려대 초빙교수·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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