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의 마지막 지켜보는 두려움 준비된 마음으로 편안한 인사 죽음을 통해 배우는 또다른 삶

성인이 되어 중환자실에서 만난 죽음은 아주 흔하면서도 낯설고 이질적이다. 우리 삶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툭 떨어진 흉측한 무엇 같다. 의료진이건 환자나 가족이건 늘 요란하게 죽음에 반응하면서 정작 임종 과정이나 죽음 준비에 대해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말을 아끼고 두려워했다. 그리고, 올해 2월에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말기환자가 연명의료 대신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선택하여 임종 과정에 겪게 될 여러 고통을 적절히 조절하며 편안하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충분한가? 이제 호스피스완화의료제도만 확대된다면, 말기환자와 가족, 의료진이 죽음에 대한 터부 없이 허심탄회하게 환자의 상태를 공유하며, 머리를 맞대고 삶의 마지막 시간을 계획할 수 있게 될까? 이렇게 질문해 보면, 죽음에 대한 터부와 두려움으로 연명의료에 매달리던 중환자실의 기억에서 몇 발자국 나아가지 못한 우리 모습이 보인다. 연명의료 결정, 호스피스완화의료 선택, 때로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조차 죽음이나 임종과정의 부정적인 경험들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가정호스피스를 받던 환자의 가족들이 환자상태나 간병부담 때문이 아니라 `죽음을 경험한 적 없거나` `죽음이 두려워서` 환자의 의지에 반해 입원 결정을 하고, 임종과정의 고통과 의존상황이 두려워 차라리 안락사하고 싶다고 하기도 한다. 호스피스 종사자들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말기상태의 모친을 홀로 돌보다 가정 임종을 지킨 30대 여성이 말했다. "그 때 엄마의 눈빛이 흔들리니까, 그 마지막 순간에 제가 말했어요. `엄마, 내가 계곡에 빠졌는데, 죽음의 순간이 왔나 하는 순간에, 파노라마처럼 뭔가 탁탁 끊기면서 나타나는데, 지금까지 행복했던 순간들만 막 떠오르더라. 괴롭거나 무서운 기억은 떠오를 시간이 없을 정도로, 안 나타나니까 너무 두려워 말아요` 그렇게 말씀 드리고 일주일쯤 있다가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시는 얼굴이 무척 편안해 보였어요. 편찮은 분 같지 않게. 저도 마음이 조금 부자가 된 것 같아요"

그 여성은 죽음 가까이 갔던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말기환자인 어머니의 죽음불안을 성공적으로 돌보고, 평화로운 가정임종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임종이 가까운 가족의 방에 들어서기조차 꺼리던 사람들이 호스피스종사자들의 다독거림에 용기를 냈다 "(손을 이끌어 임종하는 이의 손 위에 포개주고) 이렇게 손잡아 드리세요, 좋은 말씀 나누세요. 작별 인사 드리세요" 그러고 나면 한결같이 `별 거 아닌데 너무 두려워했다.`며 임종을 지킬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결국 죽음에 대한 태도는 죽음이나 임종 경험과 직접 관련되고, 나이보다는 죽음과 임종을 어떻게 경험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이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12살 소년이 일상 속에서 이런 경험이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주었다. 소년은 아버지와 나란히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장례준비를 함께했던 소년의 아버지는 "아까 절하고 인사 드렸어" 하며, 빈소 대신 지인들이 모여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순간 소년이 탁! 아버지의 손을 뿌리쳤고, "나는 절 할거야!" 하며 고인의 빈소로 향했다. 영정 앞에 두 번 절하고는 상주들과도 맞절을 하였다. 상주인 큰 할머니의 인도로 두 사람은 빈소에 딸린 작은 방에서 따로 시간을 가졌다. 잠시 후 부친이 물었다. "할머니께서 뭐라고 하셨어?" "그냥, 고맙다고…." 소년은 설명 대신 눈길을 피했다. 울컥하며 눈물을 참는 것 같기도 했다. 비로소 어른들은 소년이 증조부 제사에 참석하느라 매년 고인의 집을 방문했으며, 일주일 전 제사가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이었음을 기억해 냈다. 소년도 자신의 상실을 애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죽음을 통해 소년이 성장하고 어른들이 깨닫는 자리였다. 크고 작은 일상의 상실을 깊이 애도하고 함께 나누는 경험이 진정 죽음을 통해 삶을 배우는 지름길이었구나 하고.

김형숙 순천향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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