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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톱니바퀴는 누가 돌리나

2016-07-15 기사
편집 2016-07-15 06:34:00
 성희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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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상인이 지배하는가 데이비드 프리스틀랜드 지음·이유영 옮김 원더박스·498쪽·1만9800원

'위기의 시대'이다. 아니 '혼돈의 시대'란 표현이 더 적확하다. 영국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가 가결된 뒤, 전 세계에 후폭풍이 불고 있다. 이로 인한 파장이 어떤 결과를 낳을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미국과 유럽연합(EU)의 패권, 그리고 신자유주의 중심의 세계질서에 균열이 생긴 것은 분명하다. 변화를 앞두고 있다는 신호, 아니 변화의 물결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는 메시지가 온 것이다. 혼돈의 시대를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 다양한 해법이 제시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우선시 돼야 할 것은 새로움이다. 발 딛고 선 지축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전체를 제대로 보기 위해선 '우물 안 개구리'가 돼선 안 된다. 현상을 바라보는 보다 넓고 새로운 시선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 옥스퍼드대 사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프리스틀랜드는 최근 내놓은 그의 저서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에서 혼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오늘날 막강한 힘을 가진 '상인형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지금의 지위를 누리게 됐는지를 중심으로 역사를 재구성한 뒤 활로를 찾기 위한 새로운 제언을 한 것. 저자는 현재의 위기가 어떤 뿌리에서 뻗어 나왔는지 고찰하고, 여러 시대 속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역사의 조각들을 자신의 관점으로 연결함으로써 지금 세계가 전형적인 격변의 징후로 가득차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특히 저자는 책에서 '카스트'라는 고대의 틀을 소환해 역사의 동력을 이해하는 전혀 새로운 관점을 제안한다.

저자는 오늘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상인, 군인 (전사), 현인이라는 세 카스트의 역할과 가치를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업적이며 경쟁적인 동기를 앞세운 상인집단, 귀족적이며 군국주의적 동기를 앞세운 군인(전사) 집단, 그리고 관료제적 또는 사제적 성향의 현인 집단이 바로 그것이다. 책에 따르면 세 카스트는 서로 대립하거나 협력하며 평등을 지향하고 장인적 가치를 표방하는 노동자 집단을 억누르거나 구슬리며 권력을 쟁취하고 지배질서를 형성해 왔다. 이를 바탕으로 책은 고대부터 근·현대, 동양과 서양, 경제 이론부터 문학 작품까지 다양한 범주를 넘나들며 역사의 주요 장면을 새롭게 포착하고, 이들 카스트가 어떻게 합종연횡하며 권력의 부침과 순환을 만들어 냈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책은 현재 권력을 쥐고 있는 카스트인 상인의 지배계급 등장과 그 부침에 대해 보다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1970년대 이후 다보스 포럼에서 바람직한 미래상으로 합의된 탈규제부터, 상인 친화적 경제학의 큰 물줄기, 종교처럼 신봉받던 시장제일주의 등에 대한 고찰을 통해 상인이 지배하는 세계의 현실을 가감 없이 담아냈다. △상인 지배로 인한 노동자의 희생 △탈규제 정책과 대량실업으로 인한 금융권의 통화공세 △30년간 족쇄 풀린 상인 집단의 독주가 빚어낸 부의 불평등과 사회 불안 등을 여과 없이 그려내며, 이후의 세상 또는 세계에 대해 자연스럽게 추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를 통해 한 집단이 배타적으로 독주할 때 권력의 수레바퀴는 반드시 다시 돌아가기 시작함을 보여준다. 패권을 장악한 특정 집단의 영향력은 실로 지대하지만, 지배 집단의 패권 행사가 도를 넘어서면 결국 격변의 시점이 찾아오기 마련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역사를 반추해 볼 때 격변의 결과물은 경제 위기, 전쟁 또는 혁명이며, 그 뒤에는 반드시 새로운 집단이 권력을 잡았다. 권력의 지각변동은 이미 시작됐다. 다음은 어떤 카스트가 왕좌에 오를지, 또는 노동자를 포함한 각 카스트가 권력을 나누는 평화의 시대가 도래할지, 자연스럽게 추론으로 이끄는 것이 이 책이 주는 선물이자 과제이다. 성희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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