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얻은 건강한 먹을거리 농사는 삶 풍요롭게 만드는 거름

퇴직한 뒤를 생각해서 근교에 작은 밭을 한 필지 장만했다. 자동차로 한 시간 가까이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인지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자주 찾아가질 못했다.

그래서 이듬해부터는 동네 어른에게 농사를 짓도록 맡겨두고, 한 쪽 귀퉁이에 우리 가족이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야채를 심어 놓고 한 달에 두어 번씩 어머니와 아내랑 함께 가서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땀을 뿌렸다. 밭에 갈 때마다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풀만 뽑다가 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에서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무시무시한 슬로건을 내걸고 민생 치안에 힘을 쏟던 때가 떠오르면서 `풀과의 전쟁`을 치른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잡초는 뽑아버려도 돌아서면 이내 뿌리를 내리면서 끈질긴 생명력과 무서운 번식력으로 우리를 위협했다.

밭에서 풀과 사투를 벌이다가도 일이 끝나고 난 뒤에는 전리품으로 얻은 열무, 오이, 호박, 시금치 등을 품에 안으면 얼굴엔 웃음이 번진다. 그러면 어머니와 아내는 "우리는 참 비싼 채소 먹는다. 기름 값이 얼마냐?"라고 말하면서도 흐뭇해한다.

우리 식구들의 먹을거리를 길러내기에 땀으로 미역을 감으면서도 즐겁고, 농약을 적게 살포해서 친환경으로 가꾼 수확물이라는 것도 자랑스럽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벼웠고, 차에서 내려 가까운 이웃에게 건넬 때에는 보기보다 맛이 있다는 말을 덤으로 얹어주기도 한다. 그러면 며칠 후에 역시 시장에서 파는 것과는 다르다는 대답이 돌아오게 되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기쁨에 가슴이 뿌듯하기도 했다.

요즈음은 도회지에 살면서 농사를 짓거나 농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텃밭 가꾸기`, `옥상 밭 만들기`, `베란다에 채소 기르기`를 하면서 취미생활을 즐기고, 또 여가를 활용하여 `주말농장`에서 가족이나 지인들과 어울려 분양받은 땅을 일구면서 몸과 마음을 단련하기도 한단다. 이렇게 자연 속에서 얻은 건강한 먹을거리로 행복을 찾는 사람들과 귀농을 꿈꾸는 도시 사람들의 수가 해마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이 가끔씩 전파를 타고 있다. 실제로 2015년 8월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충남은 10년 전에 비해 농업인구가 24% 감소하였지만, 오히려 대전은 44%나 늘었다고 한다.

이를 보면 도시에 살면서 직장에서 퇴직하거나 현업에서 은퇴한 뒤에 인생 이모작으로 영농에 종사하는 도시농부의 숫자가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농사일을 하면서 보니, 농사꾼은 씨앗을 뿌리기 전에 먼저 흙을 고르고,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서 발아를 잘 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한다. 그리고 씨앗의 딱딱한 껍질을 깨뜨리고 어린 싹이 땅 위로 솟아 올라오면, 생명체가 자랄 수 있게 양분과 햇볕이 공급되도록 여건을 조성해 준다. 그러면서 각종 병해충이 작물의 성장을 방해하지 못하게 제거해 주며, 잡초를 뽑아서 작물이 성장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손질해 준다. 작은 씨앗 하나가 땅을 헤집고 올라와서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농부들은 이른 봄부터 들에 나가서 씨앗을 뿌리고 여름 내내 돌아보면서 수확할 때까지 노심초사하며 정성을 기울인다.

농작물을 가꾸면서 농사꾼의 심정은 아기를 출산해서 기르는 어미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기 엄마는 갓 태어나 말 못하는 어린 애를 기르면서 배고파하는 것을 느끼면 먹을 것을 주고, 몸에 오물이 묻었으면 깨끗하게 씻겨주며, 아픈 곳이 있으면 약을 먹이면서 쾌유를 빈다. 그리고 날씨가 춥거나 더우면 실내온도를 조절해서 아기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처럼 농부들도 작물이 필요한 때에 알맞은 거름을 주며, 괴롭히는 해충을 제거해 주고, 토양을 관리해서 품질 좋은 작물을 생산해 낸다. `농사는 팔 할이 하늘이 짓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이야기하지만,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네`라고 속삭이는 흙의 소리를 나는 들을 수 있었다.

박영진 배재대 입학사정관 전 대전대신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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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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