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대표 도서관에 프랑스 연필 비치 상품·노동력 등 국경없는 세계화 반증 이민자 제한 선택 세대갈등 역풍 우려

책상 위에 연필이 하나 놓여 있다. 작년 영국에서 구입한 프랑스제 연필이다. 어찌하여 이 연필을 구입하게 되었을까. 작년 6월 자료조사차 런던에 위치한 `영국도서관(British Library)`을 갈 일이 있었다. 일본 식민지 경험 덕분에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대영(大英)도서관`으로 인식되어 있는 그 도서관 말이다. 우리 식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 해당하는 `영국도서관`에는 수많은 사료들이 존재한다.

그 중의 하나를 찾기 위해 그곳을 방문했던 나는 보고자 하는 자료의 자세한 정보를 확인한 후 그 내용을 기록하고자 연필을 찾았는데 보이질 않았다. 주변의 사서에게 물어보니 돈을 주고 사야만 한다는 것이다. 여태껏, 주로 미국이었지만, 수십 개의 공공기록물 문서고와 도서관을 다녀보았지만, 연필이 없던 곳은 그 곳이 처음이어서 살짝 당황했다. 도대체 재정이 얼마나 궁핍하기에 그까짓(?) 연필조차 제공하지 못하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하여간 필기는 해야 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연필을 구입했다. 그런데 연필을 자세히 보니 프랑스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에게 어떻게 다른 장소도 아닌, 당신 나라 국민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공간에서 파는 연필이 프랑스제 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런 사실을 전혀 알고 있지 못했던지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당황한 표정을 속이지 못하고 "어, 그러네" 라고 겸연쩍게 대답할 뿐이었다.

비록 내가 예상치 못한 연필 구매 때문에 그 사서의 당황하는 모습으로 약간의 위로(?)를 받았지만, 사실 이러한 질문은 그리 적절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면, 간단히 말해, 이미 우리는 세계화된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상품과 서비스, 그리고 심지어 노동력조차도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세계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EU 진영 국가간 교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영국에서 프랑스제 상품을 본 들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랴.

다만 지난 열흘 넘게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영국의 EU 탈퇴, 즉 `브렉시트`가 실현된다면 이 연필의 구입가가 상승하거나 심지어 이 프랑스제 연필 대신 EU 이외의 국가에서 만든 연필이 수입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영국에 자체 브랜드를 가진 연필회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다지 경쟁력이 있지는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영국은 그 동안 EU 내에서 일종의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예컨대, 공동화폐인 유로화를 쓰지 않아도 되며, 국가 간의 국경개방을 보장하는 솅겐조약 조차 미가입해 이민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권한 또한 인정받아왔다. 어찌 보면 EU는 영국을 끌어안기 위해 영국에게 많은 예외 조항을 허용해왔던 것이다. 덕분에 런던은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며, 영국은 전반적인 제조업의 약세에도 나름 국력을 유지해왔다.

그럼에도 영국민의 다수는 놀랍게도 EU 탈퇴를 선택했다. 이번 투표로 드러난 중요한 사실은 지역별, 계층별, 세대별 차이가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내 입장에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세대간 대립이다. 탈퇴를 지지하던 중장년층과 잔류를 주장하던 청년층의 대립이 과거세대가 미래세대의 발목을 붙잡아버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미 많은 영국의 젊은이들이 다른 EU 국가들에서 일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국의 청년들이 해외로 나간 것은 생각지도 않고 자국에 들어온 이민들만 눈에 거슬린다고 탈퇴를 선택한 중장년층은 자식 세대와 완전히 등을 돌려버린 것이다.

리스본조약 50조에 따라 EU를 탈퇴하는 절차를 의회의 동의 없이 수상이 진행하는 것이 영국 헌정상 정당한 것인지, 나아가 영국민들의 국민투표가 법적 구속력을 갖는지는 이미 논쟁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몇 몇 정치인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빚어진 이번 브렉시트에 대한 국민투표는 이미 영국인들 모두에게 지워지기 힘든 상처와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겨주었다.

김덕호 한국기술교육대 문리HRD학부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