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벽 허물고 中企 진단 R&D·마케팅 등 맞춤지원

얼마 전, 중소기업 지원에 종합병원식 시스템을 도입한 독특한 사업이 우리 대전시에서 선보였다. 종합병원에서 협진을 하듯 여러 기관·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장기간 브레인스토밍을 하며 중소기업의 기술사업화 난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자는 국내 최초의 시도이다.

사실 중소기업 지원은 모든 지자체의 고민거리이다. 중소기업이 탄탄하게 허리를 형성하면서 경제를 받쳐줘야 비로소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며, 질 좋은 중소기업 일자리 창출이야말로 지역경제 발전의 마중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왜 잘 안 될까? 그동안 여러 부처·청, 출연(연) 등에서 숱한 지원 사업을 추진했지만 투자 대비 성과가 뛰어난 사업은 많지 않았다. 대전시 역시 이 답답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 고민 끝에 마침내 찾아낸 원인은`단과병원식`중소기업 지원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중소기업이 겪는 애로사항은 근본적으로 매우 복잡하다. 겉으로 보면 하나의 문제일 수 있으나, 얽히고설킨 여러 문제가 가장 취약한 곳으로 터져 나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한 부분이 어려우니 이걸 잘 해결할 수 있는 특정 전문기관이 도와주면 된다는 단과병원식 해결방법은 임시방편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밝힌 후, 해결방법은 종합병원식 시스템에서 찾았다. 각 지원기관 간, 지원사업 간의 칸막이를 제거하고,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진단부터 처방까지 맞춤형 치유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을 중소기업 지원에 적용할 수만 있다면 이미 절반은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대전은 최첨단 기술을 보유한 30여 개의 ㅋ출연(연)과 대전·세종 정부청사가 근거리에 있어 이 같은 시스템을 구성하기에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물론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기관 간 높은 장벽을 허무느라 진땀을 빼긴 했지만, 최종적으로 대전지역 5개 기관(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한국기계연구원·한국화학연구원·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참여했고 드디어 국내 최초의 종합병원식 중소기업 지원사업인 `생생기업 해커톤 캠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연구개발(R&D)·디자인·제품혁신·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단 한 개 기업의 기술사업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캠프에 모였다. 평균 8명이 4개월 동안 매주 한 번 이상 모였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최적의 해결점을 찾아갔다. 그러자 비로소 무엇이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밝혀지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이 찾아낸 문제점 중에는 기업이 이전에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아주 근본적인 것까지 포함돼 있었다.

시범사업에 참여한 3개 기업의 반응도 뜨거웠다. 칫솔 미세모 제조기업인 (주)비비씨는 3년 동안 애를 써도 안 되던 공정자동화를 한달 만에 해결했고 생산성을 10배나 끌어올렸다. 제품의 우수성을 전 세계 고객에서 객관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데이터도 확보했다. 성과에 고무된 기업 대표는 아파트를 구해 캠프에 제공하고, 심지어는 지원만 계속 받을 수 있다면 사업비용 전액을 대겠다는 의사까지 밝혔다. 또 수처리 전문기업인 (주)ANT21은 매출부진을 극복할 새로운 사업아이템을 찾아내는 동시에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광촉매 기술까지 이전받아 연구비용 수십억 원을 절감했다. 광통신부품 제조기업인 (주)빛과전자 역시 기존 사업아이템을 새로운 유망아이템으로 전격 전환하면서 수백억 원의 추가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출연(연) 등 참여 기관들도 사업에 대한 큰 만족감을 그러냈다. 그동안 중소기업 지원사업을 아무리 적극적으로 펴도 자기기관의 역량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공백이 있었는데, 종합병원식 지원캠프에서 이를 채울 수 있게 됐다며 반색했다. 그야말로 기업과 기관 모두에게 윈윈인 셈이다.

원인 모를 질병이 길어지고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다면 당연히 종합병원에 가서 여러 병과 의사에게 협진을 받아야 한다. 중소기업을 살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수많은 지원사업을 해봤지만 큰 소득이 없었다면 종합병원식 지원이 필요하다. 기관들 사이에 벽을 허물고 자연스럽게 융합해 종합지원을 하는 사업을 전국적으로 확산하는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권선택 대전광역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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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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