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투표후 "EU 탈퇴하면…?" 질문 기막혀 영국민 결정, 세계경제 불확실성 구렁텅이에 생각·욕구, 현실 부합하는지 통찰하는 자세를
4만㎞가 넘는다는 지구 둘레의 3분의 1은 넘게 가야 도착할 수 있는, 머나먼 곳에 있는 섬나라의 정치적 상황이 우리를 긴장시키는 요인 중 하나가 된 셈이다. `세계화`된 상황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한 나라의 결정이 생각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미래와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가 나온 뒤 언론이 전하는 영국의 최근 상황은 좀 실망스럽다. 이 국민투표가 영국 집권당인 보수당의 집권연장 전략이었다거나 영국의 도널드 트럼프로 비유되는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이 총리가 되려는 책략이었다는 보도도 그렇고, 브렉시트 즉 유럽연합(EU) 탈퇴 지지 진영이 투표 전 탈퇴 근거로 제시한 각종 데이터가 사실과 다른 허위였다는 점 등이 이런 느낌을 갖게 만든다.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근원지로 불리는 영국이라는 나라의 정치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선진국이든 아니든 정치판에서 뒹구는 정치인들의 최종 목표는 비열한 음모·협잡 등을 구사해서라도 권력을 쥐는 것이라는 점에서 보면 그렇다.
투표 후 영국 국민들이 보이는 태도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영국과 서유럽, 호주 등은 전기기사든 배관공이든 벽돌공이든 확실한 기술 하나만 갖고 있으면 평생 무탈하게 살 수 있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곳에서 동유럽 등에서 온 같은 기술을 가진 이민자가 현지인 임금의 절반만 받고 같은 일을 해주겠다고 하면 못마땅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할 만하다. 이민자들 때문에 내 수입이 절반쯤으로 떨어지니 배격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일견 당연하다. 하지만 투표를 하고 나서 `EU를 탈퇴하면 어떻게 되나?`, `EU가 뭐지?`라고 구글 검색창에 입력해 물어보았다는 건 기가 찰 노릇이다. 우리나라의 총선거 혹은 대통령선거에서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무조건 1번 혹은 2번을 찍은 다음, 내 인생과 사회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거지라고 물어본 것과 다름이 없다.
`EU를 탈퇴하면 어떻게 되나?`는 투표 전 물어보고 토론하고 심사숙고했어야 할 일이다. 경솔한 투표로 인해 내 남은 인생의 방향과 자녀의 미래가 확 바뀌고, 연방의 다른 지역이 남의 나라로 독립해버림으로써 나라는 쪼그라든 뒤 후회하고 다시 국민투표를 하자고 외치면 바로잡을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이런 영국인들이 딱하기는 하지만 너그럽게 동정하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투표를 잘못 한 이들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는 사이 케이블TV 드라마 `또! 오해영`이 종영했다. 온라인에서는 이 드라마 속편을 만들어 달라거나 속히 재방송해 달라는 요구가 흔하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이 지지고 볶는 이야기는 쉽게 공감과 몰입을 하게 만들고도 남지만, 드라마는 이미지의 종합일 뿐 삶 그 자체는 아니다. 우리의 실제 생활은 정치인들이 만드는 법과 정책, 조례의 제약을 받기도 하고 또 보장과 혜택을 받는다. 그리고 정치인 혹은 이들과 연결된 리더들은 국민경제의 상당부분과 수많은 종사자·가족 등의 표만을 의식해서 조선업종을 유지하려고만 하다가 7조 원을 들어먹고 그 중 일부를 빼먹기도 한다.
이 돈이 어디에서 나온 돈일까 묻고 묻다 보면, 손에 쥔 리모콘이 주는 위안에만 몰입해도 되는 건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생각과 욕망대로만 현실과 공동체가 움직여주지는 않는다. 사실을 직시하고 통찰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오도된 삶을 살지 않는다.
류용규 취재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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