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Galapagos)는 남아메리카 동태평양에 있는 섬으로 면적은 전라북도와 비슷하다. 에콰도르령(領)이지만 해안에서 926㎞나 떨어져 있어 1535년 에스파타의 탐험가에 의해 발견되기 전까지 무인도였으며, 이후에도 사람의 발길이 잦지 않다. 이처럼 세상과 단절된 채 오랜 세월 고립된 섬이기에 고유종(固有種)의 생물이 많고, 찰스 다윈이 이 곳을 방문해 진화론의 영감을 받기도 했다.

일본 게이오대학의 나쓰노 다케시 교수는 2000년대 중후반 전자제품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일본이 자국 시장만을 염두에 두고 제품을 만들어 결국 글로벌 경쟁에서 뒤쳐지는 현상을 이 섬에 빗대어 `갈라파고스 증후군`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일본의 통신기술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모바일인터넷과 모바일TV 등을 상용화했으며, 휴대전화 기술은 2000년 카메라 휴대전화, 2001년 3세대 네트워크, 2002년 음악파일 다운로드, 2004년 전자결제, 2005년 디지털TV 등 매년 앞선 기술을 선보였다. 하지만 내수시장 점유율에만 급급해온 일본 기업들이 국제 표준을 소홀히 한 탓에 경쟁력 약화라는 치명적인 약점에 노출된 것이다.

한국 정치계에서도 갈라파고스적 계파 다툼이 심각한 수준이다. 새누리당의 경우 수차례 계파청산을 선언하고 정진석 원내대표가 `친박·비박`이라는 용어사용 자제를 주문했지만, 계파갈등으로 인한 불협화음이 수시로 표출되다 보니 누구도 계파의 존재를 부인하지 못한다.

더민주 역시 새누리당처럼 수면 위에 떠오르지는 않았으나, 주류와 비주류간 힘겨루기 행태가 곳곳에서 감지되는 상황이다. 스스로 섬에 가두는 모양새일지라도 순수혈통을 엄선해 한 목소리로 나아가는 게 `효율성`면에서 더 낫다는 주장도 있다. 심지어 대선을 1년 여 앞둔 현재 시점에선 명확히 방향을 설정해 세를 규합해 나가는 게 현실적이라는 이도 있다.

물론 효율적이고, 현실적일 수는 있겠지만 국가의 미래를 선도해나가야 할 정치권이라면 좀 더 넓고 멀리 바라보고 국민들을 이끌어 가야 하지 않을까. 그들이 갈라파고스적 다툼에 치중하느라 제대로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다면 한국사회가 결국 외딴 섬에 고립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켜주길 기대해 본다. 송충원 서울지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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