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 재발견 ⑫ 아산 외암민속마을

외암마을 돌담길. 강은선기자
외암마을 돌담길. 강은선기자
따가운 뙤약볕에, 땀은 줄줄 흐르고, 동네 주민이 알려준 입구는 도대체 언제 나타나는 건지. 짜증이 극에 달할 무렵, 보였다. 아산외암민속마을 안내소가. 기쁜 마음에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않고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유레카."

관광지는 뚜벅이가 찾아가기엔 힘든 곳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그러나 자조적인 한숨도 순간이었다. 박경리의 토지 배경이 충청도라면 이곳이었을까. 아산 송악면 외암민속마을 입구에 들어서며 느낀 건 짧디짧은 지식 속에서 꺼내어든 책. `토지`였다. 토지의 배경인 경남 하동보다는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집성촌이지만 이 곳도 수 백년의 세월과 인생이 녹아있다.

아직까지도 사람이 살고 있기에 숨을 쉬고 있는 민속마을이기도 하다. 묵직함과 무게감, 생동감이 있는 외암민속마을은 그래서 `살아있는 민속박물관`으로 불린다.

외암민속마을은 아산 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8㎞떨어진 설화산 동남쪽 기슭에 위치해있다.

2000년 1월 156필지 19만7272㎡(약 6만평)이 중요민속문화재 제236호로 지정됐다.

마을 자체가 문화유산이다. 인구는 67가구에 135명이며 건축물은 총 227동으로 초가와 와가가 비슷하게 분포하고 있다. 참판댁과 건재고택이 개별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돼 있으며 참판댁의 연엽주 제조기술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도 지정됐다.

외암민속마을은 약 500여년 전부터 강씨, 목씨, 진씨가 살았다고 전해지며 1546년 선조 때 예안이씨 이사종이 처가인 외암마을에 정착한 후 후손이 번창하면서 예안이씨 집성촌이 됐다. 그 후 후손들이 번창하면서 양반촌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집성촌이 민속마을로 지정된 곳은 아산 외암민속마을 외에 경북 안동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민속마을이 있다.

`외암`이라는 마을 이름은 인근의 역참(역말·역촌리)의 말을 거두던 마을이라는 의미의 `오양골`에서 유래했다. 오양골에서 외양골, 외암골, 외암리로 변형됐다고 전래한다.

성리학의 대학자인 외암 이간(1677-1727)선생이 마을에 살면서 널리 알려졌는데 그의 호는 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간 선생은 마을을 둘러싼 설화산의 우뚝 솟은 형상을 따서 호를 외암(巍巖)이라 지었는데 마을 이름과 발음은 같되, 뜻은 달리한 것으로 보여진다.

외암민속마을에는 충청지방 고유 격식을 갖춘 반가의 고택과 초가, 돌담, 정원이 옛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특히 택호를 갖고 있는 기와집과 다른 마을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초가집 등이 모두 중요한 문화유산이 되고 있다.

가옥은 주인 관직명이나 출신지명을 따서 참판댁, 감찰댁, 풍덕댁, 교수댁, 참봉댁, 종손댁, 송화댁, 건재고택(영암댁), 신창댁 등 택호(宅號)가 정해져있다.

건재고택은 영암군수를 지낸 외암 이간의 5대손 이상익이 1896년 현재의 모습으로 건축을 시작했으며 정원수와 자연석, 반달형 연못, 거북섬 등은 정원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다. 건재라는 택호는 이상익의 아들 이욱렬의 호에서 유래하였으며 이 집안의 사위였던 추사 김정희의 현판 등이 보존돼 있다.

참판댁은 19세기 후반 규장각 직학사와 참판을 지낸 퇴호 이정렬이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아 지은 집으로 돌담을 쌓아 공간을 구획하는 독특한 형태와 함께 집안의 살림살이가 잘 보존돼 옛 생활방식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전통가옥이다.

송화댁은 송화군수를 지낸 이장현으로 인해 택호가 붙었으며 정원수와 형상석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전통정원이 눈길을 끈다.

교수댁은 이사종의 13세손은 이용구가 성균관 교수를 지냈다고 해 붙었으며 이 집의 정원은 건재고택, 송화댁과 함께 외암마을을 대표한다. 한 때 교수댁은 지역의 한 대학 교수가 살기도 했다.

퇴호거사라는 현판은 이정렬공이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았다고 한다.

마을 인근에는 이간선생이 유학을 강론하였던 관선재에는 외암문집 판각이 보관돼 있으며 마을 입구에 안동 권씨 정려 등의 유산이 보존돼 있다. 종손댁에는 9대손 종부가 기거하고 있다.

외암마을은 예부터 제주도처럼 삼다(三多)마을로 알려져있다. 삼다란 돌·말·양반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마을의 담장은 모두 돌담으로 만들어져서 얼핏 제주도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다. 이곳의 돌담을 모두 이으면 6㎞나 된다고 한다.

선비가 모여 살면서 고사(考課)독서하니 글 읽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 해 말(言)이 많으며, 양반이 많다는 것은 외암마을 선비들이 벼슬길에 오르는 등 많은 인재가 배출돼 그리 불렸다.

돌담길을 따라 마을을 걸으면 마을 주민들이 마당 청소를 하거나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모두 여기에서 반평생 혹은 평생을 살아온 주민들이다.

60년 넘게 마을에서 살아온 채수남(85)할머니는 "국가에서 문화재로 지정해 새로 짓지는 못하지만 보존한다는 의미가 크기 때문에 크게 불편하진 않다"면서 "해마다 볏짚을 갈아줘야하는 초가집이지만 조상들의 지혜가 녹아있는 건축구조라 여러 장점을 설명해주곤 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예약만하면 팜스테이(민박)도 할 수 있다.

외암민속마을 입구에는 조선시대 당시 생활상을 고스란히 재현해 놓은 외암민속관이 있다. 이곳에는 상류층, 중류층, 서민층 가옥 12동을 주축으로 조선시대 신분별 주거공간을 그대로 만들어놓았으며 주거용구류, 부엌살림류, 농기구류, 소품류 등 각종 생활공예품 1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마을은 넉넉잡고 2시간이면 충분히 볼 수 있다. 모든 길은 통하듯, 돌담길을 따라 걷다보면 일부러 방향을 틀지 않아도 모든 주택을 마주할 수 있다. 한옥 카페에서도 음료를 저렴히 판매하고 있어 더할 나위 없는 `슬로 여행(slow journey)`코스다. 아, 팁(tip) 한가지. 이곳에는 외암민속마을보존회가 입구에 있지만 보다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을 들으려면 문화해설사나 민속마을관리소를 찾는 것을 추천한다.

임동수 외암민속마을관리소 팀장은 "외암민속마을은 올수록 진가가 보이는 곳"이라면서 "문화제나 축제 등이 열릴 때 오면 외암의 향기를 진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은선 기자

◇즐길거리 - 장승제부터 짚풀문화제까지

외암민속마을에서는 매년 문화제 등 축제도 활발히 열리고 있다. 주민들이 직접 기획하는 축제는 마을의 자생력을 키우는 큰 축이다.

외암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1월 14일에 장승제가 열리고 10월 중에는 짚풀문화제가 펼쳐진다. 장승제는 달짚을 태우는 것으로 정월대보름 저녁에 달이 떠서 망월을 할 무렵에 마을 뒷동산이나 들판 등에서 달짚 태우기를 한다. 마을 청년들이 산에 가서 잎이 붙은 푸른 소나무를 베어다 세우고 그 주위에 가가호호에서 모아온 짚단을 세우고 새끼로 붙들어 매면 마치 노적처럼 된다.

짚풀문화제는 매년 10월 중에 펼쳐지며 이 기간에 마을을 방문하면 국악공연을 관람하고 짚풀로 짚신이나 이엉엮기를 하는 것과 벼베기, 장승 및 연 만들기 등 공방 체험도 할 수 있다. 또 짚풀문화제 행사 때마다 외암 이간 선생을 기리고자 과거시험을 재현하고 있다.

상설체험으로는 떡메치기 체험과 다듬이 등을 할 수 있고 전통혼례도 신청하면 이곳에서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릴 수 있다. 강은선 기자

◇찾아가기 - 아산서 마을까지 1시간 50분 시내버스타고 ‘느린 여행’을

외암민속마을을 그대로 느끼고 싶다면 자가용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을 권한다. 시내버스를 타고 지역 여행을 하면 관광지를 목적으로 한 여행보다 훨씬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될 것이다. 역촌리 등 외암리 마을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도 있다.

KTX천안아산역과 아산역(수도권전철)에서 아산방면의 990번을 타면 외암마을로 갈 수 있다. 990번 버스를 1시간 반 정도 타고 아산 신도브래뉴 아파트 정류장에서 아산시내버스 100번으로 환승해 외암3리에서 하차하면 된다. 총 여행 소요시간은 1시간 50분 가량이다.

버스정류소에서 도보로 10분이면 외암마을입구에 도착하는데 입장료는 어른 2000원(단체 1600원), 청소년·군인 1000원(단체 800원), 어린이 1000원(단체 800원)이며 아산시민은 할인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개방된다. 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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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서 내려다 본 외암리=아산외암민속마을관리소 제공
하늘서 내려다 본 외암리=아산외암민속마을관리소 제공
외암마을 전경. 강은선기자
외암마을 전경. 강은선기자

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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