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부역혐의 희생 800명 추모사업 지지부진 市, 관련사업 전무… 법적 배상 제자리 한숨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도 원통한데, 정부나 지자체가 위령사업을 '나 몰라라'하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 아산유족회 김장호(74) 회장의 일성이다. 김 회장의 부친인 고 김기성씨는 1950년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으로 사망했다.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은 한국전쟁 시기인 1950년 9월 말부터 1951년 1월 초까지 최소 77명 이상이 인민군 점령시기 부역했다는 혐의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온양경찰서 소속 경찰과 대한청년단, 청년방위대, 향토방위대 등에 의해 배방산 방공호와 폐금광, 염치면 대동리, 선장면 군덕리, 탕정면 용두리1구, 신창면 일대 등에서 민간인을 집단 살해한 사건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위원회)는 전시 계엄 하에서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되는 시기였다 해도 무장한 경찰 및 치안대가 단지 부역했다는 혐의, 또는 그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민간인을 적법한 절차도 없이 살해한 행위는 명백한 위법이고 헌법에서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2009년 5월 결정했다. 과거사위원회는 '아산 부역혐의 희생 사건'으로 숨진 민간인이 최소 800여 명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김 회장은 "부친이 돌아가신 해 내가 10세였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며 "빨갱이라는 밀고로 경찰 탕정지소로 끌려간 부친이 다른 희생자들과 함께 지소 뒷산에서 총살당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가족들 전부가 죽음에 내 몰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건 이후 가족 모두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며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전까지는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의 희생자 규모가 적지 않음에도 위령이나 추모사업이 지지부진한 것에 아쉬움을 비쳤다. 과거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 이후 2010년 10월 11일 탕정면 이순신대로변에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희생지'를 알리는 안내판 제막식과 위령제가 봉행됐지만 위령사업은 그 뿐이었다.

아산시는 김영애 시의원의 대표 발의로 지난해 7월 '아산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추모에 관한 조례'를 공포했다. 조례에 따르면 시는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민간인 희생자와 관련된 자료의 발굴·수집 및 간행물 발간 등의 사업을 할 수 있다. 조례 제정에도 불구하고 관련 사업이 추진된 것은 한 건도 없다.

김 회장은 "과거사위원회 조사시 누락된 아산 부역혐의 사건 희생자가 200여 명 정도 된다"며 "과거사위원회가 없어진 뒤 추가조사가 이어지지 않아 누락된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이나 법적 배상이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한숨을 토했다.

그는 "올해로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6주년이 됐다"며 "더 시간이 흐르기 전에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의 추가 조사와 함께 사람들이 머무르기도 어려운 대로의 길가에 세운 안내판이 아니라 제대로 된 위령비라도 지방정부가 나서서 건립해야 한다"고 일침 했다. 윤평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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