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사관학교 졸업 뒤 임관해 40년을 바다에서 살아왔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이 사용했던 구축함에서 영관장교로 복무하며 매일 보던 글귀가 `Safety is paramount`였다. 공문에도 빠짐 없이 씌여 있었다고 한다. 안전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익혀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계기다. 군내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제 3함대 사령관(소장)과 교육사령관·작전사령관(이상 중장)을 지냈고, 합동참모본부 합동참모차장(대장)을 역임했다. 상훈으론 보국훈장 통일장과 터키공화국 훈장, 보국훈장 천수장이 있다. 특히 대통령 표창을 세 차례 받은 게 눈에 띈다.
세월호 사태 뒤 페이스 북에 올린 `절망과 희망 사이`라는 글이 적지 않은 울림을 남겼다. 그는 `절망스런 바로 그 자리에 희망이 숨어 있다`며 8세 때 어머니를 잃은 경험담을 바탕으로 담아낸 메시지는 호소력이 컸다.
2014년 12월 장관으로 취임하고 1년 9개월 동안 정부서울청사 인근 비상대기요원 숙소에서 숙식을 해결해왔다. 중앙재난상황실을 떠나지 않고 국민안전을 책임지겠다는 공직관이 느껴진다. 저녁 약속은 단 3차례뿐이었다. 구호협회와 2회, 국회 행정안전위 의원들의 강권으로 부부 모임을 한번 가진 게 전부다. 명절 때 제사도 옮겨온다.
충청과의 인연이 깊다. 해군 인사참모부장과 전투발전단장 재임 시 계룡대에서 근무했다. 또 2012-2014년 충남대 석좌교수를 지냈다. 제자 30명이 올해 해군 장교로 임관해 그가 걸어온 길을 걷고 있다. 박 장관은 "제가 본 충청인은 적극적이고 역동적이었다"며 국민안전에 있어 큰 역할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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