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희망 하모니… 老 시인의 노래

"이 시집을 통해 각종 암으로 투병 중인 수많은 환우, 그리고 함께 가슴앓이 하는 가족들이 조금이나마 위로와 용기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암투병중인 노(老)시인 한정민(72·사진) 씨가 아내와 자신의 투병 이야기를 담아 엮어낸 시집을 병원에 기증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27일 을지대병원에 따르면 2002년 암선고를 받은 한정민 씨의 아내는 처음 찾아간 병원에서 `치료불가`라는 말과 함께 서울의 한 병원으로 이송됐다. 한 씨는 당시 부쩍 늘어난 아내의 기침에 큰 신경을 쓰지 못한 채 병원에 가보라는 말만 건넸다. 그는 지금까지도 아내와 함께 병원에 가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한씨는 "자식 걱정이 늘 먼저였던 집사람은 병원을 가자고 해도 한사코 괜찮다고만 했다"며 "아들이 갑자기 병원신세를 지게 돼 이때다 싶어 아내도 검사를 받게 했다. 그런데 의사가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며 집에 가지 말고 기다리라고 말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아내에게는 폐암 말기가 선고됐다. 늦게서야 발견된 만큼 아내는 3년 가까이 암과 싸웠다. 하지만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로도 낫지 않고 병세가 악화돼 중환자실에 머무는 기간이 적지 않았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만 만날 수 있던 아내는 어느 날부터 한 씨가 찾아와도 두 눈을 감은 채 말이 없었다. 한 씨는 곱기만 하던 아내의 얼굴이 뼈만 남아 앙상해져 있을 때 아내가 떠나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결국 한 씨는 아내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아들과 함께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긋지긋하던 암은 그를 놓지 않았다. 한 씨는 방광암 진단을 받고 3년 전 시술을 받아야만 했다. 천만다행으로 재발 소식이 없이 그는 현재 건강하게 살고 있지만, 아직 2년은 더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

그도 아내도 힘든 투병생활을 겪었지만, 그의 곁에는 늘 시가 있었다. 지난 2014년 아내의 투병을 도우며 쓴 시집 `먼 훗날`을 펴냈던 한씨는 최근 본인이 암투병을 겪으며 느낀 두려움과 고통, 희망을 담은 시집 `병상일기`를 출간해 을지대병원에 100권을 기증했다.

황인택 을지대병원장은 "이번 시집은 담당의와의 신뢰를 바탕으로 병마와 싸우며 희망을 찾아가는 고된 과정이 세세히 그려져 있다"며 "모든 환자분들이 이 시를 읽고 용기와 희망을 찾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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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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