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 좋아하는 배추라고

통배추 신문지에 둘둘 말아서 보내 줬는데

겨우내 버린 듯 베란다에 두었다가

남녘 봄소식 세상 부산하기에

간만에 청소나 할까 둘러봤더니

고스란히 한 계절 고요하게 기다리던 그 배추

겉잎이 시들어 쪼글쪼글 우리 엄마 살결 같아

짠한 마음에 물속에 담가 놨더니

잎잎이 생기 돌기 시작 했어요

엄마처럼 웃기 시작 했어요

얼마나 고맙고 애잔한지

한 쌈 한 쌈 고추장에 찍어 먹으며

못난 아들 생각에 한숨지었을 엄마 생각에

숨이 막힐 것 같았어요

꺼억꺼억 먹다가 그 고갱이 노란 빛이 기막히게 선해서

먹지도 못 하고 다시 물속에 담가 놨더니

대궁이 서고 사이사이 잎이 팼어요

엄마 눈물 같은 꽃이 슬며시 고개 들어

화안한 꽃을 피웠어요

엄마 얼굴로 피어났어요.

늦도록 홀로 지내는 아들 생각에 통배추 신문지에 둘둘 말아 보내주신 엄마의 사랑. 엄마가 보내온 배추는 그대로 우리 엄마다. 그 엄마의 배추를 고이 모셔둔 일은 효인지 불효인지. 겨우내 베란다에 두었다 봄꽃 북새통에 그제야 주섬주섬 신문을 풀었겠다. 그러니 엄마는 한 계절을 고스란히 베란다에서 떨며 기다려온 셈. 그러나 엄마의 그 사랑은 한 겨울 넘겨도 변하지 않는 법이니. 언뜻 쪼글쪼글해 보여도 물속에 잠시 묻어놓으면 잎잎이 생기가 돌고 또 돈다. 금방 파릇파릇 살아나 웃는다. 아들은 반가운 마음에 한 쌈 한 쌈 고추장 찍어 먹다가. 이내 목이 매어 다 먹지 못하고 물에 담가놓는데. 아뿔싸, 그 고갱이 속에서 대궁이 일어서고 사이사이 잎이 팼어라. 그리곤 슬며시 꽃이 고개를 드는데. 아, 자세히 보니 그건 또 우리 엄마 눈물. 그러나 어느새 환한 얼굴 미소로 변해간다.

어허 목청이 걸걸하고 막걸리 꽤나 좋아하는 그 아들. 입심 좋고 늙수그레한 사내 얼굴 떠오르네. 아들이여 엄마가 보내준 배추 제 철을 놓치고 고갱이 속의 배추꽃을 보겠는가. 그대 그래도 엄마의 사랑으로 시 한편은 건지지 않았나. 올 가을에 보내주실 엄마의 사랑은 이제 더 방치하진 않겠지. 시인·한남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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