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거주 탈북자의 한국적응기

"한국에서 직업도 갖고 아들·딸도 모두 결혼, 쌍둥이 손자까지 얻었으니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충남 서산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자 허인숙씨(가명·59·여)는 한국 생활에 대해 아주 만족스럽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허씨 가족의 탈북기는 한편의 드라마 같았다. 함경북도 경성에서 살았다는 허 씨는 생계유지가 어려워 이대로 있다가는 모두 굶어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남편, 시아버지, 시동생이 먼저 1998년 5월 두만강을 건넜다. 두만강을 건너간 지 5개월이 되도록 소식이 없어 가족들은 강을 건너다 모두 물에 떠내려가 사망한 것으로 여기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중국에 사는 사촌누이에게 국제전화를 해봤더니 공사장에 다닌다는 소식을 접했다. 공사장에서 번 돈으로 나머지 가족들을 탈북시키기 위해 서로 연락하다 그 해 9월 허 씨와 아들, 딸 등 3명이 두만강을 건넜고 그후 시누이, 조카 등 가족이 모두 탈북에 성공 했다.

허 씨 시아버지는 강을 건너다 물을 많이 마셔 실신하기도 했고 허 씨가 강을 건널 때 북한군 경비원에게 들켜 경비원이 중국까지 헤엄져 쫓아오다 돌아갔으며 중국에서 도피생활을 하다 아들과 딸은 다시 북한으로 끌려가 2년 동안 고초를 당하고 다시 강을 건너 탈출했다. 이어 중국에서 생활하다 2002년 시동생이 먼저 대한민국 품에 안겼으며 나머지 가족들은 2003년에 한국에 왔다. 이들이 탈북을 결심할 때 북한은 장사해서 한 끼씩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많았으며 그나마 장사 밑천 등 능력이 없는 사람은 길거리에 누워 굶어 죽는 사람을 수없이 봤다고 허 씨는 말했다.

경성에서 인민반장을 맡아 일해 왔다는 허씨는 "하루는 6살짜리 어린이가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밭 고랑에 심어놓은 씨 감자를 캐서 생으로 먹다 주인한테 들켜 싸우는 광경도 목격했다"며 "마을에 초상이 나면 한국의 부의금처럼 한 가구당 쌀 500g을 초상집에 갔다 주면 그 걸 가지고 장례를 치렀는데 굶어 죽은 사람이 많아 지면서 그나마도 하기 어려워졌다"고 회상했다.

허 씨는 "한국에 오니 정부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국적을 만들어 주고 임대 아파트까지 마련해주는가 하면 각종 기술도 배울 있도록 배려해 주는 등 몸만 건강하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게 해주고 있다"며 "현재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어 먹고 살 걱정이 없어졌으며 아들·딸도 모두 결혼 쌍둥이 손자까지 얻은 할머니가 됐다"고 행복해 했다.

허 씨는 "한국에서 10년 넘게 생활하다 보니 이젠 적응도 잘하고 서산에도 170여명의 이탈민이 생활하고 있어 이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 등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며 "다만 어려서부터 살던 고향이 가끔 생각나 고향을 마음대로 왕래 할 수 있는 통일의 그날이 오길 손꼽아 기다린다"며 흐뭇해했다. 서산=정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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