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허드슨 감독

결승점. 누군가에게는 영광, 다른 이에게는 절망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흘렸던 땀은 동일하지만 결과는 다르다. 물론 결과뿐 아니라 달리는 과정도 저마다 다르다. 그것은 달리는 목적도 마찬가지다. 같은 코스를 달린다고 해도 결국은 동상이몽(同床異夢)이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당도한 결승점은 승패와 상관없이 밝다. 빛이 있다. 그것이 영광의 빛이든 시들어 가는 것이든 마찬가지다. 빛은 겪었던 어둠을 보상할 수 있을 정도로 소중하다. 인고의 시간을 견뎠다면 그 누구라도 빛을 누릴 권리가 있기에 더욱 그렇다. 완주만 한다면 승자가 아니라도 박수받는다. 그래서 담금질은 중요하다. 연마하고 마모되며 흘린 한 개의 땀방울은 지난한 길목에서도 기어코 한 걸음을 더 내딛게 만든다. 그 땀의 과정에 숭고한 목적까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레이스가 된다.

사실 영화 `불의전차`는 1981년 개봉 이후 불후의 명작이라는 지위까지 획득한 작품이다. 이미 개봉 30년을 훌쩍 넘긴 작품인 만큼 명작을 즐기는 독자라면 찾아 보고도 남았음직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영화가 국내 관객들에게 정식으로 소개되는 게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이다. 개봉 당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 음악상 등 평단과 관객의 사랑을 고루 받았던 영화는 공교롭게도 개봉 당시 국내 스크린에서 상영되지는 않았다. 아마 스포츠 영화가 인기가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그리고 국내에서도 영화에 대한 열기가 지금과 다소 차이가 있었기 때문일 테다.

제8회 파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영국 스프린터 `해럴드 에이브러햄(벤 크로스)`과 `에릭 리델(이안 찰슨)`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는 스포츠 영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들이 금메달을 따내기까지 겪은 고뇌와 갈등을 그린 휴먼 드라마다.

1924년 올림픽 육상종목에 출전하게 된 해럴드는 유태인이다. 뛰어난 운동신경과 달리기 실력으로 주목받는 그였지만, 해럴드는 유태인 고리대금업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차별과 멸시를 받아야만 했다. 그 덕분인지 열등감에 비례해 투지는 충만했다. 달려야 할 이유는 명확했다.

에릭은 선교사다. 자신에게 천부적인 능력을 준 신에게 늘 감사하며 살았다. 신이 준 선물을 올림픽에서의 금메달로써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대회에 참가하고 보니 자신의 경기 일정은 안식일인 일요일. 고민에 빠진 그는 자신의 신앙에 따라 결국 경기를 포기하려 하지만, 국가는 그에게 애국심을 강조하며 대회에 출전할 것을 강요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덕분인지 영화는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다. 불굴의 의지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어떻게 당면한 갈등을 극복하는지 명쾌하게 보여준다. 특히 가장 원초적 스포츠인 `육상`이라는 장치를 사용한 덕분에 감동은 더욱 극대화 된다. 주인공들은 자신을 채찍질하고 한계까지 몰아 붙이며 갈등을 극복하려 한다. 이 과정이야말로 영화의 핵심이다.

영화는 특히 동명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만으로도 하나의 이정표가 됐다. 개봉 이후 각종 매체는 달리는 인물이 나올 때마다 으레 반젤리스의 `불의전차(Chariots of fire)`를 흘려 보낸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들으면 `아, 이 곡!`하고 떠오를 정도다.

음악과 별도로 눈여겨볼 만한 점은 시각적 요소들이다. 사진 자료로만 보던 복장, 경기 모습, 풍경 등이 하나의 스크린 안에 풍성하게 담겨 있다.

온 힘을 다 해 달리는 선수들의 모습을 슬로모션으로 처리한 것도 눈에 띈다. 배우들은 연기를 하고 있지만 제작진은 이를 가식없이, 가감없이 담아내 실제 선수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당시 시대상황과 인물을 밀도 있게 그려낸 덕분이다.

그래서 불의 전차라는 영화는 소중하다. 영화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저 열심히 달린 두 젊은이의 모습이 담백하게 담겨 있다.

편법이 난무하는 지금, 현실을 극복하려 한 젊은이들의 정직한 노력이 다소 생경하게 느껴질 법하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숭고한 목적이 있었던 만큼 과정 역시 중요했을 것이다. 결승점을 가장 처음 통과하겠다는 목표가 있었지만, 그들은 결국 근본적인 목적에 맞는 깨끗한 준비 과정을 보여줬다. 어쩌면 90여 년이 지난 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이들이 이룬 성과가 아닌 뚜렷한 목표와 페어플레이 정신이 아닐까. 전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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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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