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王 錫 글雲 米 그림

에스키모의 사냥꾼들이 평소 살고 있는 해안선에서 내륙의 고지에 올라가 캐리브 사냥을 했는데 한꺼번에 일곱 마리나 잡았다. 에스키모 사냥꾼들은 캐리브 사냥에서 일찍이 그런 큰 수확을 얻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사냥꾼들은 임시 본거지인 천막 안에 일곱 마리나 되는 캐리브들을 끌고 와 해체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관례에 따라 해체는 하면서 가장 맛있는 부위를 골라서 계속 먹고 있었는데 그때 사냥꾼들을 따라온 마을의 장로가 일어나 고함을 질렀다. 장로는 중년의 사냥꾼 한 사람을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아 이 친구야. 넌 이제 철도 들 나이가 되었는데 아직도 그 따위 칼질을 하고 있어. 마을에 돌아가서 아낙네들로부터 매를 맞을 거냐"

나이 마흔인데 아직도 철이 덜 든 것 같은 그 사냥꾼은 등뼈부근을 칼질하다가 그만 건(鍵.힘줄)을 건드린 것 같았다.

캐리브의 건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건 에스키모 아낙네들이 캐리브의 껍질로 옷을 만들 때 중요한 부분을 봉합하는 실이었다. 어떠한 것으로도 대용할 수 없는 튼튼한 실이었는데 그 사냥꾼은 그만 실수를 한 것 같았다. 고함을 지른 장로는 계속 일어나 사냥꾼들의 해체작업을 감독하고 있었다. 캐리브는 에스키모의 중요 식량이 되는 동시에 옷을 만드는 재료가 되었다. 극한 영하 40도의 북극에서는 옷이란 에스키모들의 목숨을 지켜주는 중요 생필품이었다. 그래서 에스키모의 여인들은 정성스럽게 오랜 시간에 걸쳐 그걸 만들어 냈다.

그동안 캐나다 북쪽 끝에 있는 그 캐나다 에스키모 마을을 찾아온 서양 민속학자들은 캐나다 에스키모에 대한 여러 가지 주장을 했고 그 주장들은 일치되지 않았으나 한 가지 일치된 것이 있었다.

캐나다 에스키모 여인들이 방한옷을 만드는 데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기술자라는 점이었다. 약 서너 달 동안 어느 에스키모의 집에서 그들과 같이 살면서 그들의 생활을 관찰했던 영국인 민속학자 두 사람은 의도적으로 그 집 여주인의 생활을 관찰했다.

그 여주인은 캐나다에서 에스키모들에게 생필품을 운송할 때 쓰여졌던 나무상자로 만든 움막집에서 같이 지냈는데 안쪽에 있는 자기 자리에 앉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밥도 거기서 먹고 잠도 거기서 자고 대소변의 배출까지도 석유깡통을 이용하여 거기서 했다.

에스키모의 남자들은 명랑한 사람들이었으며 늘 웃는 얼굴로 지내고 있었으나 그 여인은 웃지 않았고 그렇다고 불만스러운 표정도 아니었다. 거의 무표정하게 쥐고 있던 짐승의 껍질을 매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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