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 출생 역사 고증 독립외친 큰 인물 그의 담론 속에 살아 있는 사상 재조명 대전의 정신적 의지처·뿌리 생각해 볼만

서울대 국문과 방민호 교수
서울대 국문과 방민호 교수
단재 신채호(1880.11. 7-1936.2. 21) 선생 그를 백과사전에서 찾으면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면 어남리 도림마을 태생으로 나온다. 반면 오래되지 않은 인터넷 지도 같은 것은 그의 생가가 대전시 중부 어남동 233번지라고 한다. 대전이 넓어지면서 그는 대덕 아닌 대전 사람이 되었다. 생가 터가 지금 고증을 거쳐 복원되어 있고 대전 광역시 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단재 선생의 기념관은 지금 정작 충청북도 청주에 가 있다.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에 세워져 단재 사상을 기리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는 그의 순국 80주년이다. 기념관 홈페이지는 그를 기리는 여러 활동들이 펼쳐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단재를 청주에서 열심히 기리는 데는 그 나름의 지역적 근거가 있다. 위의 생가에서 단재는 아버지가 세상 떠난 여덟 살 때까지 살았다. 그후 할아버지가 계신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 고두미 마을에서 10년을 살았고, 그 다음은 서울의 성균관 시절이다. 그는 19세에 성균관에 입학해서 26세에 성균관 박사가 되었다.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서 있던 구한말 시절, 그는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에서 논설을 맡아 애국계몽사상을 설파하는 한편 역사 연구에 뛰어들어 이태리건국 삼걸전, 을지문덕전, 이순신전, 최도통전 같은 역사전기를 집필했다.

기어코 나라가 망하자 단재는 중국으로 떠나 더욱 가열찬 투쟁을 벌여나갔다. 자신의 역사관과 역사 연구를 줄기차게 새롭게 해 나갔다. 유학에서 출발했지만 아나키즘을 탐색하는 데로 나아갔고, 의열단의 조선혁명선언문을 쓰고 마침내 조선상고사 같은 명저를 남겼다. 조선상고사는 그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한국사의, 고조선에서 삼국시대에 걸치는 역사 시간을 밝혀놓은 저술이다. 아직도 숱한 논쟁과 논란의 대상이 되어 있고, 특히 민족주의적 열정을 지닌 이들에게는 경전적 지위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나는 이 조선상고사를 비교적 최근에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문맥 사이에 살아 숨쉬는 그의 뜨거운 열정과 날카롭기 그지없는 역사의식은 읽는 이의 고개를 저절로 숙어지게 했다. 이 책에서 그는 우리 민족의 역사의 시원으로서의 고조선의 역사적 존재를 논의했다. 고조선의 강역이 지금 우리가 통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훨씬 넓었음을 주장했다. 또 일본인들이 한국사의 타율성론을 펼치는 근거가 된 한사군, 그 가운데서도 낙랑군의 위치를 새롭게 보고자 했다. 역사를 보는 눈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독립을 위한 기초를 닦아 세우고자 한 것이다. 오늘날 역사를 실증적으로 자료에 입각하여 연구한다고 하는 이들 가운데에는, 단재의 이 두 인식이 부족했음과, 한사군, 특히 낙랑의 유물이 지금의 평양 지역에서 출토되었음을 들어, 단재사학의 부정확성, 민족주의적 열정의 허무를 논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역사학자가 아닌 나는 단재가 주장한 것이 사실이었느냐에는 보다 관심이 적다. 내가 중시하여 보는 것은 그의 담론 속에 살아 있는 사상 그 자체이자 진실을 향한 의지다. 그는 주장했다. 역사상 낙랑은 적어도 두 곳 이상이 있었다. 그중 북쪽의 낙랑만이 한사군의 일부인 중국 지배의 낙랑이었고 남낙랑, 곧 평양의 낙랑, 호동 왕자가 공주로 하여금 자명고를 찢게 하여 마침내 허물었다는 최씨 낙랑은 조선계의 나라다. 일본은 이 최씨 낙랑을 일종의 고고학적 사기술과 문헌 해석상의 왜곡을 통해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으로 둔갑시켰다. 그는 이를 자신의 학문으로 논증하고자 했다. 그는 많은 중국 문헌들을 비교 검토했고 사실을 정확히 비정하려 했다.

그를 아주 가까이에서 느낀 때는 중국의 뤼순 감옥을 견학했을 때다. 그는 그 먼 중국 땅 감옥, 안중근, 이회영 같은 지사들이 숨져간 형무소에서 57세로 뜨겁고 한 많은 일생을 마쳤다. 실로 일신의 안위와 영달을 돌보지 않은 일생이었다. 평생을 바쳐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이 역사가를, 대전이 더욱더 자기쪽으로 끌어당겨 사랑해 주기 바란다. 아직도 대전에는 정신의 의지처, 뿌리가 필요하다. 다른 곳에 위탁해 두고 만족할 일이 아니다. 이 단재 선생 생가를, 한번 가본다 가본다 하고 미루기만 했다. 여름이다. 며칠 사이에 꼭 한번 가서, 그가 내게서 얼마나 가까운 곳에 존재해 왔는지 두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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