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대전의 대중문화 중 나름대로 프로레슬링과 극장 쇼의 흥행이 제법 잘 되던 도시였다. 당시 `박치기 왕` 김일 선수가 오면 만원사례를 이루고, 재개봉관에 극장 쇼가 들어오면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 70년대에는 세계타이틀 매치 권투시합이나 국가대표 축구중계가 있는 날이면 다방에 둘러앉아 함께 소리 지르던 때였다.

그러나 그 시절 누구보다 고급스런 의상이나 먹거리 등의 유행을 이끌던 곳은 바로 백화점이다. 근대문화를 메이크업한 이 백화점에는 생활필수품조차 구하기 어려운 시기에 꿈과 사치로 포장된 삶을 우리에게 제시하였고, 문명과 상업을 조화시켜 쇼윈도에 진열시켰다. 일반적으로 지상 1층에는 명품잡화, 화장품과 구두가, 2층에는 여성의류, 3층에는 아동의류, 4층에는 남성의류, 5층 스포츠와 아웃도어 매장이 있으며, 에스컬레이터로 편리하게 동선을 연결시켰다. 그 위층에는 행사장과 레스토랑이나 나이트클럽, 영화관이나 갤러리가 있다. 또한 지하에는 시식코너에서 간편한 식사를 마치고 슈퍼마켓에서 일상잡화를 구입할 수 있다.

일제 강압기에 대전역 앞, 옛 산업은행 대전지점 옆에 `미나까이`라는 최초의 백화점이 있었다. 해방이 되자 그 자리에 왕생백화점으로 명분을 유지했다. 그러다 1973년에 대전천을 복개하여 목척교를 중심으로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 생기고, 1981년 중앙로 사거리 선화동 시민관 자리에 12층짜리 동양백화점이 서면서 본격적인 백화점시대가 열렸다. 이후 동양백화점은 둔산에 타임월드(1996년)를 개점하였으나, IMF 한파가 지나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화그룹 갤러리아 백화점으로 주인이 바뀌고, 현재는 뉴코아(NC)로 바꿨다.

1980년 초 원동에 부라다백화점이 문을 열면서 대전에서 처음으로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였고, 이후 무궁화백화점(용두동), 유락, 엔비백화점(은행동), 대전백화점(원동)이 문을 열었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둔산 도심에 한신코아, 마크로, 월마트, 까르푸, 코스트코,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 창고마트 형식으로 변신해 성업했다. 그러나 세이백화점과 롯데백화점은 후발 주자이지만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건축의 3대 요소 중 하나인 `기능`을 흡족하게 만족시켜주는 백화점은 기능상으로 보면 최상 서비스가 제공되는 장소로 오락을 즐기고, 영화도 보고, 식사를 할 수 있는 넓은 주차공간을 갖춘 장소이지만, 보다 더 좋고, 더 넓은 공간을 소비자는 항상 찾고 있다.

유병우 씨엔유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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