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 행보로 절제의 메시지 전달 퇴임 후 정부직 논란 역발상에 달려 여권 주자들 빈약, 결심은 그의 몫

나병배 논설위원
나병배 논설위원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은 공직 입문 46년째를 맞아 올 연말 사무총장직 임기를 마친다. 정상에서 내려올 일만 남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종착역을 내년 대선에 둔다면 그의 공직 열차는 한 구간을 더 내달려야 한다. 반 총장도 대선행 열차에 환승하기로 내심 의지를 굳힌 듯하다.

지난 주 반 총장의 방한 일정 6일은 대선 워밍업이나 마찬가지였다. 잠재적인 유권자들을 만나는 기회에 무언의 대선 출마 메시지를 날린 셈인데,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두지 않았나 싶다. 야권 대선 주자들로선 반 총장 행보가 눈엣가시 같았을 것이다.

반 총장에 대한 야권 주자들의 경계 심리는 그래서 동병상련이다. 국내에 `부존재`하는 데도 여론 지지율에서 각축을 벌이는 현실이라면 곤혹스러운 게 맞다. 내년에 그가 본격적으로 대선판에 뛰어들면 소위 `검증 관문`을 통과하는 데 애를 먹을 것이라고 야권은 단언한다. 다가오지 않은 상황이긴 하지만 개연성을 아주 배제하기 어렵다. 그동안 묻혀져 있던 논란거리가 드러날 수도 있고, 외부에서 발생한 악재가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이는 그때 가서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반 총장은 강점 요소를 적잖이 보유하고 있다. 야권 주자들이 그를 상대하기 버거운 까닭이기도 하다. 대선 승패의 변곡점을 좌우할 수도 있는 문제다. 일단 유엔 사무총장 이력은 배타적 정치자산이다. 대선 때 지지표로 환급받을 지 모른다. 일부에선 사무총장 퇴임 후 정부직을 맡는 것은 유엔총회 결의사항 위반임을 지적한다. 일리가 없지는 않다. 해당 결의사항은 `유엔 사무총장 지명에 관한 약정서`를 지칭한다. 문제의 내용은 사무총장직을 그만둔 뒤 출신국(자국) 정부직을 안 맡아야 하며, 이유는 각국 비밀을 취득하는 직위에 있었기 때문임을 명시하고 있다.

이 약정서는 70년 된 문서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유엔 창립 시기의 일이다. 그 때 국제 정세와 비교하면 지금은 상전벽해다. 사무총장직을 활용해 유엔 회원국에 해를 끼칠 일도 없거니와 그런 일은 가능하지도 않다. 오히려 역발상이 필요하다. 반 총장의 경륜과 노하우, 세계질서의 작동원리에 대한 이해 등은 국익에 유용하게 작용할 수 있다. 어차피 기속력이 있는 규정이 못 되므로 최종 유권해석은 반 총장 몫으로 남겨두면 그만이다.

그런 규제 문구보다 실질적인 영역은 따로 있다. 반 총장은 유엔 본부가 있는 뉴욕에서의 10년 생활을 마감한다. 사무총장 직무와 관련된 부분은 논외로 치더라도 10년을 외국어를 구사하며 살았다는 것은 소중한 축적이다. 소위 정부직 취임을 가정할 경우 외국 정상과 회담할 때 소통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다. 상대가 미국 대선주자인 힐러리와 실시간 대화가 가능한 상황을 상정해 볼 수 있고, 중국 시진핑 주석·일본 아베 총리 등과 통역 없이 의사소통하게 된다면 외국어 구사력은 또 다른 의미의 `무기`일 수 있다. 부인 유순택 여사의 외국어 습득력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자식들 문제에 관해서도 반 총장은 신경 쓸 일이 없어 보인다. 아시아재단에서 일하는 큰딸이나 UNICEF(유엔아동기금) 직원인 막내딸은 외국에 나가 생활하고 있고 아들은 미국 유학중이다.

그런 반 총장에게 정치적 운때까지 겹치고 있다. 20 대 총선 참패로 여권 대선 주자들이 된서리를 맞는 상황이 닥쳤고, 이에 여당 주류세력은 몸이 달았다. 반 총장이 유력 대체재로 떠오른 것도 결국은 여당내에 반 총장을 떠받치는 부력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단순한 지역 구도도 유리한 편이다. 반 총장이 충청과 대구·경북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비해 부산·경남 연고의 야권 주자들은 단일화 이전까지는 표를 갈라먹어야 한다. 물론 본선에 가면 세대별·계급별 투표 성향, 정권심판론, 북핵 변수 등이 위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대선 `상수`로 일컬어지는 반 총장은 44년 생이다. 수신·제가에 이어 유엔 사무총장에 올라 `평천하(국제 문제를 공평하게 관장)` 경험도 쌓았다. 이제 `치국 퍼즐`이 남는다.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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