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살인, 공동체 규범·윤리 교육 강화로 예방"

김진환 형사정책원구원장이 잇단 강력범죄에 대한 견해를 말하고 있다.  빈운용 기자
김진환 형사정책원구원장이 잇단 강력범죄에 대한 견해를 말하고 있다. 빈운용 기자
"21세기 현대사회는 범죄와 위기가 많은 `복합적 위험사회`라고 진단됩니다. 범죄 대책이 발전할수록 수법이 더욱 교묘하게 진화합니다. `묻지마 살인` 같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론 가정과 학교, 사회가 공동체 규범과 윤리 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또 범죄 예방과 수사, 재판, 교정 분야가 보다 전문화, 과학화돼야겠죠."

김진환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은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잇단 범죄에 대해 큰 우려를 표시하면서 공동체 규범 교육 강화와 함께 관련 기관의 전문화·과학화를 강조했다. 김 원장이 이끌고 있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KIC)은 1989년 설립돼 지난 27년간 범죄대책분야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해온 국무총리산하 국책연구기관이다. 충남 부여가 고향인 김 원장은 서울지검장 등 검찰 핵심 요직과 법무법인 충정 대표변호사로 일한 중진 법조인으로 지난해 6월 취임했다. 김 원장은 법조계의 전관예우에 대해선 법조계의 자정 노력을 역설했고, 충청인을 향해선 "자긍심과 정체성을 확립하고 서로 도와 단합함으로써 제 위상과 역할을 찾아야 할 때"라고 힘주어 말했다.

◇대담=송신용 서울지사장

-취임한 지 1년이 됐다. 성과와 앞으로의 계획은.

"벌써 그렇게 됐나. 30년간 검사, 10년간 로펌 대표로 일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범죄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에 보람을 찾다 보니 어느 덧 1년이 훌쩍 지났다.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과 위험수준의 사회갈등, 잔존부패를 일소하기 위해 `안전·통합·청렴`을 목표로 국정현안과제를 개발하고 이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다. 효율적으로 조직을 정비했고, 연구 성과에 대한 평가가 좋아졌다. 저희 연구원은 유엔이 지정한 범죄방지네트워크기관(UNPNI)이다.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세계적 형사정책 연구기관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다."

-최근 `묻지마 살인`에서 보듯 범죄가 흉포화·지능화·첨단화되는 추세다. 근본적인 대응 방안이 없을까.

"기존의 범죄유형뿐 아니라 신종 사이버 범죄, 드론과 로봇을 이용한 마약밀매, `도촬` 같은 사례가 늘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이나 사생활 침해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저희 연구원은 50여 명의 법학, 범죄학, 사회학, 심리학, 교육학, 경제학 박사들과 60여 명의 연구보조인력이 범죄의 실태와 원인, 그 대책을 연구하고 미래 신종범죄에 대한 선제적 정책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얼마 전 대검찰청 회의실에서 `첨단과학기술과 형사정책을 주제로 한국포렌식(Forensic·과학수사)학회와 함께 공동 심포지엄을 개최한 것도 그 일환이다."

-제 2의 세월호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사회 안전망을 확보하는 게 중요할 텐 데 연구원 차원의 구상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고도산업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는 교통사고와 산업재해 등 8가지의 사고 유형이 걱정된다. 지난해 저희 연구원은 `다중인명피해 안전사고에 대한 형사정책적 대응방안`을 집중 연구했다. 독일과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가의 안전대책까지 검토해 형사정책적 대응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그 제안이 여러 안전관련 개정 법령에 반영돼 보람을 느낀다. 금년부터 5년간 국민의 안전체감도를 높이기 위한 대형연구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외국인이 보는 한국인의 이미지는 `근면함`과 `빨리 빨리`라고 한다. 그러나 빨리 빨리가 대충 대충, 건성 건성병으로 변질돼선 안된다. `철저하고 빈틈 없는 부지런함`,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프로정신`이 더해질 때 안전사고가 획기적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본다."

-부정부패 척결이 중요한 과제다. 이와 관련, 김영란 법이 논란이 되고 있는 데 견해는.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이 됐다고 자부하지만 국제투명성기구(IT)는 한국의 부패인식지수를 43위로 낮게 평가한다. 일명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 관행을 뿌리 뽑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지만 논란도 없지 않다. 언급하기 조심스럽지만 시행 전에 손을 좀 보는 게 좋을 듯하다. 지난해 우리 연구원은 이미 이 법의 쟁점에 대한 법리적 검토와 국민의식조사를 실시해 그 연구결과를 국회와 헌법재판소 등에 보낸 바 있다."

-사이버상을 포함한 테러 대비가 발등에 불이다. 대응책과 아울러 국제 공조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인데.

"테러는 국경을 넘는 조직범죄이므로 각 나라가 독자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또 우리나라는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로 안보에 대한 위협이 가중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우리 연구원은 유엔 및 미국연방법무부의 고위 테러전문가, 일본과 중국의 사회안전전문가들이 참가한 안전대책 국제포럼을 개최하고 테러 등 안보위협요인에 대한 정책대안을 모색했다. 이 자리에서 14년간 미뤄왔던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의 조속한 입법을 강력히 촉구했는 데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금년에는 현실공간뿐만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서 획책되는 테러에 주목해 `사이버 테러방지 대책`을 주제로 국제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인문학적 통찰력을 갖추신 법조인으로 유명하다. 최근 전관예우 논란에 대해 솔직한 심경을 들려 줄 수 있겠나.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게 생각한다. 변호사법 제 1조는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변호사는 결코 법률상인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고, 변호인을 선임한다는 말보다 `변호사를 산다`는 말이 통용되고 있어 안타깝다. 전관변호사의 승소율이 높다면 단지 청탁 때문이 아니라 소송기술과 변호능력 차이 때문일 수도 있다. 최근 보도된 몇 탈선변호사들의 예외적 사례로 법조계 전체를 매도하는 것도 적절치는 않다. 다만, 법조계도 신뢰향상을 위해 더 치열하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김 원장은 근본적인 전관예우 근절책 중 하나로 법조계의 그릇된 기수문화와 관행 타파를 제시했다. 후배가 승진했다고 사직할 것이 아니라 판·검사가 정년까지 자기 일만 하도록 한다면 예방이 가능하다는 말로 들렸다.

-파워 엘리트 집단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역할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더불어 사는 사회공동체를 유지하는 데는 무엇보다 가진 자, 힘 있는 자 등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과 나눔, 베풂의 정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원칙과 신뢰, 준법이라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확충해야 한다. 먼저 지도층이 소통과 공감, 대화와 타협, 신뢰와 겸양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법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게임의 룰이 될 수 있도록 `나부터 지킨다`는 생각으로 먼저 법과 원칙을 지키고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충청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충청도는 김장생, 김집, 이경여, 송시열, 송준길, 윤증, 김정희 등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끈 양반의 고장이면서도 최영, 성삼문, 임경업, 이순신을 비롯 김좌진, 이범석, 윤봉길, 손병희, 한용운, 신채호, 유관순 등 충신·열사를 배출한 충절의 고장이다. 충청의 충(忠)은 중심(中心)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의 중심인데 늘 변방으로 밀려 충청의 가치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말은 둔해도 실천하는 데는 민첩해야 한다`고 `눌언민행(訥言敏行)`을 강조했다. 이제 충청인들이 문무를 겸비한 충청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자긍심과 정체성을 확립하고 서로 도와 단합함으로써 제 위상과 역할을 찾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김진환 원장은

김진환 원장은 "법학도 폭 넓은 인문학적 뿌리가 필요하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이는 인문학적 통찰력을 바탕으로 `법 속의 인간`을 바라보는 법률가로서 길을 걷게 한 밑바탕이 됐다.

경기고와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법무부 검찰국장과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 서울지검장 등 검찰의 꽃이라는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쳤다. 재임 중 국비 유학생으로 독일 막스플랑크 국제형사법연구소에 파견됐고, 프라이부르크대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세상을 뒤흔든 `대규모 어음 위조단 사건`이나 `대학입시 부정 사건` 등을 깜끔하게 처리해 법무부장관 표창과 근정포장, 훈정근정훈장 등을 받았다. 검찰을 떠난 뒤 법무법인 충정 대표변호사와 대한공증인협회장 겸 아시아회장으로 활동했다. `인간 냄새나는 변호사`를 지향하되 공익 활동을 병행했다. 또 한국형사판례연구원장과 한국비교형사법학회장, 한국포렌식학회장,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을 맡아 법학계와 실무계의 가교역을 하면서 높은 신망을 얻었다.

청와대 법률비서관과 유엔 산하 국제검사협회(IAP) 한국인 첫 집행위원, 세계 경영연구원 이사, 700인 CEO 클럽 회장, 서울회현로타리클럽 회장 등을 역임해 국정과 세상을 읽는 시야가 남다르다는 평이다.

역사 연구모임 `자운회`의 창설 멤버이자 `시와 시학` 운영위원장, `바그너협회`이사로 활동하면서 법과 정의, 예술의 관계 등에 대해서도 천착했지만 문학을 빼놓고 오늘날의 김 원장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매월당 김시습의 후손인 그는 소년 문사(文士)로 일찍부터 이름을 날렸다. 아버지는 대도시를 마다하고 의료기관이 없는 부여에서 평생을 봉사와 청빈을 실천한 의사였지만 아들 진환에게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하라"며 법관을 권했다. 서울법대 재학 중 낙산문학회장으로 활동했고, 법대생으로는 유례 없이 서울대 주최 대학문학상을 수상했다. 3학년 때 3선 개헌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기초했다가 곤욕을 치른 뒤 사법시험을 준비한다. 1년 6개월 만에 사시 14회에 합격하고, 검사 시절 얻은 별명 `일요 과부남편`은 그의 집념을 보여주는 일화다.

한편으론 재경부여군민회장을 8년째 맡고 있을 정도로 고향과 향우 사랑이 특별하다. `정신장애 범죄자의 형사책임에 관한 연구`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저서로 `역사에 묻고 미래에 답하다`가 있다. 김 원장은 `역사에…`에서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보는 지혜와 해법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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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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