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서 세계인 어울림 한마당 다름 인정하는 문화 확산되길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넝쿨장미가 초록 잎사귀와 보색 대비를 이루며 어우러져 있다. 금방이라도 핏물을 쏟아낼 것 같은 선홍의 장밋빛은 사람들의 마음은 물론 파란 하늘까지 물들이기에 충분한, 아름다운 오월이다.

지난 21일은 UN이 정한 `세계 문화 다양성의 날`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1일이 부부의 날과 중복된다는 이유를 들어 2007년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에 의해 5월 20일을 `세계인의 날`로 지정하였고, 올해로 9회째를 맞았다.

올해 세계 문화 다양성의 날에는 대전에서도 의미 있는 행사가 펼쳐졌다. 대전국제교류센터주관으로 대전 서구 둔산동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세계인 어울림 한마당`은 모처럼 세계인이 모여 서로의 문화를 나누는 장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체류외국인 200만 시대에 걸맞게 보라매공원은 세계 곳곳에서 한국을 찾아 온 외국인들로 북적거렸고, 이들과 한바탕 놀이마당을 펼칠 시민들까지 더해져 축제 열기는 한층 뜨거웠다.

앞쪽에 마련된 중앙무대에서는 귀에 익숙하지 않은 음악과 춤사위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뒤이어 한 무리의 어린이들이 무대에 올라 아름다운 하모니를 연출한다.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이라고 소개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단정하게 제복을 차려 입은 세계 각국의 건장한 군인들이 무대에 등장해 있다.

공원 주변을 둘러싸고 펼쳐진 20여 개 나라의 음식 부스에서는 낯선 음식 냄새가 풍겨 나왔다. 때 이르게 찾아 온 여름 날씨로 행사장은 한 여름 불볕더위를 방불케 했다.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 외국인들은 각자 자신의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고, 수백 명의 시민들은 각 음식부스를 돌며 낯선 이국의 음식을 맛보느라 열심이었다.

필자는 아제르바이잔, 모로코, 잠비아, 탄자니아,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배재대학교로 온 유학생들과 함께 한마당 잔치에 참여하게 되었다. 일반인에게는 이름조차 낯설게 들리는 이 나라의 젊은이들은 사흘 전부터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시식회까지 하며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주최 측에서 마련한 안내문구 이외에도 직접 자신의 나라 국기를 만들어 걸고, 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 앞에서 땀을 쏟아냈다. 워낙 생소한 나라의 음식이라서인지 우리 부스를 찾는 한국인들이 꽤 많았다. 어린 학생들부터 연세 지긋한 분들까지 오셔서 이들 나라의 위치를 물었고, 사용하는 언어에 대해 궁금해 하였으며, 이들이 만든 특이한 모양과 향취를 지닌 음식을 주문했다. 익숙하지 않은 향미가 행사장을 찾은 시민들의 식욕을 자극했거나, 이로 인해 우리 고유 음식을 더 찾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벚꽃 지는 걸 보니 / 푸른 솔 좋아 / 푸른 솔 좋아하다 보니 / 벚꽃마저 좋아

김지하의 `새봄`이라는 시이다. 화려한 벚꽃과 소박한 소나무는 얼핏 반대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다시 들여다보면 서로가 고유의 색깔을 지닌 채 조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피부색도, 얼굴도, 언어도 다른 사람들이 어우러져 음식을 나누고 있는 것을 보며 이게 바로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우리는 서로가 가진 차이에 대해 얼마나 관대했는지 자문해 본다. 다름과 틀림을 구별하지 못했고,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 적이 많았을 것이다. 근래에 자주 회자되는 융합도 통섭도 물론 시의적절한 용어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다양성과 조화`라는 쉬운 단어를 떠올려 본다.

겨울 소나무가 더 파래 보인 것은 하얀 눈과 함께였기에 그랬고, 초록 잎사귀가 있어 빨간 장미가 더 붉게 보이듯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진정한 어울림 마당을 기대해 본다. 행사에 참여했던 모든 이들이 어우러짐의 가치를 새삼 생각해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국토의 중심부인 대전에서 이처럼 세계인이 하나 되는 축제의 장이 자주 열렸으면 좋겠다.

이영조 배재대학교 주시경교양대학 글로벌교육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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