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팔도유람

사진=맥키스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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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게 우거진 수목들 사이로 뙤약볕이 내리쬐는 대전 계족산 숲길을 걷다 보면, 마치 더위에 살짝 익은 듯한 불그스레한 황톳길이 눈앞에 펼쳐진다.

낯선 장소에 대한 경계심을 뒤로한 채 신발을 벗고 한발 내딛는 순간 그 동안 잊고 있었던 무엇인가가 나를 반긴다. 내 발을 감싼 흙의 감촉에 대한 설렘인가, 아니면 추억인가, 아니 그리움일 듯도 하다. 그렇다, `포장`이라는 미명 아래 많은 길들이 시멘트와 아스팔트로부터 생명을 빼앗기기 이전, 옛 추억에 대한 그리움. 흙을 동무 삼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놀다가 해질녘이 되면 어김없이 밥 먹으러 들어오라며 날 부르던 어머니의 목소리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또 그 시절 함께 흙에서 뒹굴고 놀았던 옛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도 함께.

나무 사이로 나부끼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어느새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식히려 잠시 멈춰 선 동안, 어린 아이와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가족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어린 아이는 마치 놀이동산에 온 것 마냥 함박웃음을 지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그렇다, 내가 예전에 느꼈던 감정을 저 아이도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다만 저 아이에게도 지금의 감정이 나중에 그리움으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 한 편에 서글픔이 묻어나는 듯하다. 하지만 그 그리움이 아름다웠던 과거 혹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내 삶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며 스스로를 달래본다.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중산층의 삶을 그려냈던 소설가 박완서(朴婉緖)는 자신의 산문집 `호미` 중 `흙길 예찬`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늙은 관절은 흙길과 시멘트길을 민감하게 구별한다. 똑같은 십리길이라도 시멘트 길과 흙길은 걷고 난 느낌이 완연히 다르다. 긴장하지도 방심하지고 않고 나무처럼 꼿꼿하게 땅과 직각을 이루며 흙길을 걸으면서 흙이 뿜어 올린 온갖 아름다운 것들, 나무, 꽃나무, 들풀, 물풀, 주위에 있는 비닐하우스나 주말농장에서 풍겨오는 채소와 거름냄새를 맡는 기쁨을 무엇에 비할까. 처음으로 직립해서 두 발로 땅을 박차던 태초의 인간의 기쁨과 자존이 이러했을까. 아침마다 산에 오르던 걸 걷기로 바꾼 것도 직립의 기쁨 때문인 것 같다"고.

◇ 백제의 숨결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계족산=대전 8경 중 하나로, 대덕구에 위치한 계족산(鷄足山)은 이미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닭의 다리를 닮았다고 해서 닭발산이나 닭다리산이라고도 불려왔다고 한다. 계족산의 높이는 해발 423.6m로, 대전 인근에 있는 계룡산(높이 845m)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다소 아담한 산이지만 아름다운 숲과 골짜기 등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산의 규모와 달리 정상에는 백제 때 돌로 쌓은 계족산성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사적 제355호인 계족산성은 계족산 위에 있는 테뫼형 산성으로 현존하는 성벽의 안쪽 높이는 3.4m, 외벽 높이는 7m, 상부 너비는 3.7m의 규모를 갖추고 있다. 금강 하류의 중요한 지점에 있고, 백제시대 토기 조각이 많이 출토되고 있어 백제의 옹산성(甕山城)으로 추정되고 있다.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 부흥군이 계족산성을 근거지로 해 신라군의 진로를 차단하기도 했고, 조선 말기 동학 농민군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 시민들의 힐링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계족산 황톳길` =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숲속 맨발걷기`라는 독특한 테마를 갖고 탄생한 계족산 황톳길은 대전 대덕구 장동 삼림욕장부터 임도를 따라 총 14.5㎞ 구간에 조성돼 있으며 봄부터 가을까지 맨발 체험이 가능하다. 또 부드러운 황토가 발바닥을 포근하게 감싸주기 때문에 발 마사지는 물론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서 삼림욕까지 한꺼번에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특히 4월부터 10월까지 주말(토·일요일 오후 3시)마다 열리는 맥키스오페라 뻔뻔한클래식 공연 등 다채로운 콘텐츠까지 더해지면서 계족산 황톳길은 시민들의 문화·힐링 공간으로 자리매김 해 가고 있다. 주말이면 젊은 연인과 가족 단위 등산객 등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관광 100선`, `5월에 꼭 가볼만 한 곳`과 여행전문기자들이 뽑은 `다시 찾고 싶은 여행지 33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 `계족산 황톳길`의 시작은 `우연`

2006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계족산 황톳길의 시작은 맥키스컴퍼니 조웅래 회장의 아주 우연한 계기와 배려의 마음에서 시작된 것으로 유명하다. 조 회장은 평소 즐겨 찾았던 계족산에서 지인들과 함께 걷던 중 불편한 하이힐을 신은 여성에게 자신의 운동화를 벗어주고 양말만 신은 채 자갈길을 걷게 됐다. 맨발로 한참을 걸은 조 회장은 발이 아프고 힘들었지만, 그날 저녁 하체가 따뜻해지고 머리가 맑아져 오랜만에 숙면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후 더 많은 사람들과 맨발 걷기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전국의 질 좋은 황토를 구입, 계족산에 황톳길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맨발로 걷기 좋은 황톳길은 단순히 황토를 깔기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날씨상황에 맞춰 수시로 보강 작업을 해야 한다. 날이 건조해 황토가 딱딱해지면 뒤집고 물을 뿌려 말랑말랑한 상태로 다시 만들고, 비가 많이 오면 질퍽거리지 않도록 황톳길을 비닐로 덮는 노력들이 지금의 계족산 황톳길을 만들어왔다. 박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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