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의 엄지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사이언스북스·464쪽·2만2000원

판다의 엄지는 사람처럼 다른 손가락들과 마주 볼 수 있다. 자이언트판다는 식육목에 속하는 동물로, 보통의 곰과는 조금 다르다. 보통의 곰이 식육목 중에서도 잡식성이 두드러진 동물이라면 판다의 식성은 한 방향으로 좁게 한정됐다. 대나무만을 먹기 때문이다. 중국 서부의 산악 지방에 있는 대나무 숲에 서식해 포식자에게 위협당하는 일도 없어 땅에서 하루 평균 10-12시간을 대나무를 씹어 먹으며 보낸다. 상반신을 세운 자세로 앉아 2개의 앞발로 대나무 줄기를 잡고 엄지와 나머지 발가락 사이로 줄기를 통과시켜 잎을 뜯어내 새순만을 먹는다.

이 책에서는 판다의 엄지에 주목하고 있다. 다른 손가락과 마주 볼 수 있는 엄지는 인류의 번영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판다의 발가락 수는 엄지를 제외하고 5개다. 엄지는 독립적으로 진화한 여섯 번째의 발가락인지 생각해볼 만하다. 실제 판다의 엄지는 해부학적으로 발가락이 아닌 손목을 이루는 작은 부분인 요골종자골이라는 뼈가 커진 것이다. 요골종자골은 판다의 앞발의 발바닥을 이루는 두 부분 중 하나로, 5개 발가락이 발바닥의 다른 부분의 틀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 고랑이 발바닥의 두 부분을 분리시켜 대나무 줄기를 쥘 수 있는 통로 구실을 한다는 말이다. 판다의 실제 엄지는 별도의 기능을 갖기에는 지나치게 특수화됐기 때문에 물건을 붙잡을 수 있도록 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에 판다는 손에 있는 다른 부분을 활용해야 했고, 확대된 손목뼈를 이용한 것이다. 자이언트판다의 가짜 엄지를 해부학적으로 분석해 진화의 결과물이 완전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 책은 고생물학자이면서 진화 생물학자였던 스티븐 제이 굴드가 27년 동안 `이 생명관`이라는 제목으로 매달 연재했던 `내추럴 히스토리`의 300편의 글 중에서 초기 원고 31편을 엮어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1980년 처음 출간됐고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에 번역 출간된 바 있다. 오랫동안 절판 상태로 있었고 과학 독자들 사이에서 복간 희망 1순위로 거론되던 책이다.

굴드는 과학적 개념이 어떻게 오해받고, 오용되는지 보여주면서 환원론·결정론·원자론 같은 단선적인 견해가 과학자들을 어떤 식으로 오류를 이끄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역사적 과학이라는 접근 방식을 통해 과학적·역사적 사실들을 제시하면서 그 사실들을 서로 교차시키고 충돌·결합시켜 진실을 도출해 내는 굴드의 과학 글솜씨에 주목해야 한다.

8부로 구성된 이 책은 진화 생물학의 역사와 과학자의 삶, 과학 교육·윤리, 성차별이나 장애인 차별 문제와 같은 정치적·사회적 이슈까지 폭넓은 범위를 아우르고 있다. 1부에서는 판다와 거북, 앵글러피시를 다루며 진화라는 현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다윈의 학설과 적응의 의미를 다룬 2부와 변화의 속도와 그 양식을 다룬 5부, 크기와 시간의 척도를 다루는 8부 등 3개의 부는 자연학의 진화학적 연구의 중요한 주제와 관련돼 있다. 이외 3부(인간의 진화)와 4부(과학을 정치적으로 해석한다), 6부(최초의 생물), 7부(무시되고 과소평가된 동물들)는 동물과 그들 역사의 특이성을 다룬다.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에는 아직도 풍부한 미래의 가능성을 갖고 있고 여러 과학 분야, 즉 모두를 포괄하는 연속체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우리 모두의 생존과 관계된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과학 사회학과 진보적 관점에서 진화론과 과학의 이면을 살펴 진화의 역사, 과학의 역사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을 줄 것이다. 김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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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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