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만에 재회한 손녀와 할머니 스크린 가득 펼쳐진 제주도 풍경 뻔하지만 콧등 짠하게 하는 감동 현대사회 잊혀진 가족애 되새겨

듣기만 해도 아련함이 먼저 떠오른 단어들이 있다. 어머니, 할머니 등으로 불리는 이 시대의 어머니들이 그런 단어 중 하나이지 싶다. 마음과 같이 행동하지 못한 미안함과 언제나 받기만 한 죄송함. 아련함의 근본에는 이런 감정들이 깔려 있다.

영화 `계춘할망`은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언제나 인자한 웃음으로 손주들을 감싸주고, 더 주지 못해 미안함을 느끼는 할머니에 대한 고찰이라 해도 무방하다. 제목만 들어도 손수건을 준비해야 할 것 같은 이 영화는 많은 극장에서 개봉하지 못했지만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관객들을 모으고 있다. 영화 소재의 영원한 스테디 셀러, 가족. 이제 할머니와 손녀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영화의 시작은 이렇다. 12년 전 재래시장에서 해녀 계춘(윤여정)은 손녀 혜지(김고은)를 잃어버린다. 이후 12년 만에 계춘은 잃어버린 손녀를 기적적으로 찾는다. 손녀 혜지와 예전처럼 단둘이 제주도 집에서 함께 살면서 서로에게 적응해간다. 그러나 아침부터 밤까지 오로지 손녀 생각만 가득한 계춘과 달리 12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통 그 속을 알 수 없는 다 커버린 손녀 혜지. 어딘가 수상한 혜지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의심이 커져가는 가운데 혜지는 서울로 미술경연대회에 참가하러 갔다가 사라진다. 영화는 12년 만에 혜지가 계춘을 찾아온 이유, 할머니와 떨어져 있던 시간동안 혜지에게 일어난 일을 찾아가고 있다.

이 영화는 윤여정과 김고은의 조합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윤여정은 매 작품마다 대체불가한 연기와 함께 독보적인 아우라로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사로잡는다. 연기 인생 50년이 넘는 관록의 배우지만, 매번 새로운 캐릭터를 추구하는 열정을 지닌 그녀가 이번에는 제주도 해녀 할머니가 됐다. 영화에서는 그동안 보여준 세련된 감각과 도회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오매불망 손녀만 생각하는 `계춘`역을 맡아 손녀에 대한 사랑은 누구보다 강한 우리 시대 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준다.

김고은은 치명적인 매력의 10대 소녀부터 비정한 세계에서 생존 본능만으로 살아가는 강한 캐릭터, 그리고 최근 드라마를 통해 선보인 사랑스러운 여대생의 생활연기까지 어떤 캐릭터든 완벽하게 흡수해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성하며 대한민국 영화계 블루칩으로 손꼽히는 배우다. 영화 에서 12년 만에 제주도 계춘 할머니 집으로 돌아온 손녀 `혜지`역을 맡은 김고은은 할머니와 떨어져 지낸 과거를 숨긴, 속을 알 수 없는 예측불가한 캐릭터의 복잡하고 섬세한 감정 연기를 펼친다.

이와 함께 제주도의 자연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놓으면서 아름다운 영상미를 관객에서 선사한다. 제주도는 계춘이 칠십 평생을 살아온 삶의 터전이자, 혜지와 함께하기에 더욱 의미가 크다. 마을 해녀들과 함께 물질을 하는 바다, 낮게 쌓아 올린 돌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등교길 등 일상의 모습이 평범하면서도 눈부시게 아름답다. 여기에 유채꽃밭, 사려니 숲, 풍차 해안도로 등 천연 자연의 수려한 영상미는 제주도 로케이션의 백미를 보여주면서 손녀와 할머니에게 각각 주요 공간으로 자리잡는다.

영화를 보면 눈물이 나고, 가족들도 생각나지만 영화 그 자체로만은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이다. 가족 휴먼 드라마의 짜여진 공식을 철저히 따라가지만 사건과 사건을 연결해주는 동기들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재래시장에서의 이별, 재회, 그리고 또 다시 헤어지고 만나고를 하면서 짜임새 있는 구성이 아쉬웠다. 김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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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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